부치지 못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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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앤의 조언

부치지 못한 편지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2




샘, 지난번에 앤이 있는 고아원에 다녀오면 편지한다는 말 기억하고 있지. 오늘 아침부터 김복식과 나는 평양 외곽의 고아원으로 검진을 나갔네. 앤이 반갑게 맞아주더군. 그녀는 3년째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다네. 경험이 많아서인지 정말 아이들을 능숙하게 다루더군.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다네.



진료가 다 끝나서 짐을 챙기고 있는데, 앤이 나를 찾아 왔네.



한스 : 간호원, 주사기는 따로 챙겨 놓으세요.



간호원 : 선생님, 어떤 약을 남겨두고 가야 합니까?



한스: 아스피린, 다야졸, 신토미찐, 깔쩩스를 놓고 가지요.



간호원: 알겠습니다.



앤 : 한스, 고생 많았지요.



한스 : 앤! 어서 오세요.



앤 : 바쁜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한스 : 아닙니다. 여기 앉으세요.



앤 : 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가져오신 옷도 고맙구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



한스 : 뭘요. 여기 앤 같은 분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와 볼 걸 그랬습니다.



앤 : 아이들 상태가 어떻든가요? 특별히 아픈 아이는 없나요?



한스 : 전체적으로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빼놓고는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나저나 제가 있는 진료소를 찾아오는 아이들이나 여기 있는 아이들이나 영양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앤 : 그래도 지금은 천국이에요.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정말 끔찍했어요.



한스 : 그래요? 어느 정도였습니까?



앤 :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도 많았고, 그 와중에 연약한 아이들과 로인들이 많이 죽어 나갔어요.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네요.



한스 : 음…그랬군요.. 앤 생각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까? 단순히 자연재해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앤 : 홍수가 나긴 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리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굶어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서도 국가가 그걸 방치했다는 거예요.



한스 :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앤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여기 지도자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세요. 자기 아버지를 영원히 모신다며 금수산기념궁전이라는 것을 짓는 거였어요. 그때 들어간 돈이 자그마치 8억9천만 딸라에요. 그 돈으로 식량을 샀다면 굶어죽는 사람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는 거지요.



한스 : 아니 뭐라구요? 궁전을 건설한 게 언제입니까?



앤 : 95년에 건설을 시작해서 98년까지도 관련공사를 했으니 그 규모가 엄청나지요.



한스 :조선의 식량난이 가장 심할 때 그런 공사를 했단 말인가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정말 상상이 가질 않는군요.



앤 : 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우리 산보나 할까요?



앤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를 인적이 뜸한 오솔길로 데려갔네.



앤 : 내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는 줄 아세요? 히틀러는 가스실에서 유태인을 죽였지만, 김정일이라는 사람은 북조선이라는 거대한 감옥에서 사람들을 죽인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갔지만 김정일은 이 사실을 꽁꽁 숨기기에 바빴어요. 지난번에 말했던 제 친구 제인 기억나요?



한스 : 네. 그 추방당했다는 친구요?



앤 : 제인은 외부세계에 조선의 비참한 실상을 알려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자료들을 모으고 다녔는데, 결국 담당보위원에게 발각돼서 추방당하고 말았죠. 한스도 안심해선 안돼요. 당신한테도 감시자가 있을 거예요.



한스 : 감시자요?



앤 : 안내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감시자죠. 그들뿐만 아니라, 조선은 서로가 서로를 다들 감시해요. 정말 미친 곳이죠. 아마 지금은 제 말이 잘 리해가 안 되실 거예요.



한스 : 사실 저도 낌새가 이상한 것은 느꼈지만, 감시자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앤 : 조심하고, 또 조심하세요. 조선에서는 말과 행동이 달라야 되고, 의문이 있어도 절대 표현해서는 안돼요.



한스 :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전 그저 이곳 사람들을 도와주로 온 것뿐인데....



앤 : 한스 스스로가 느낄 때가 있을 거예요. 제인이 추방당할 때 나도 그만둘까 했었는데, 여기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러지 못했어요. 미공급때 정말 어렵게 살린 아이들이거든요.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그만 돌아가 봐야겠어요. 아마 오늘이 한스를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걸 거예요. (손을 내밀며) 건강히 남은 임기를 마치기를 기원할게요.



한스 : 오늘 얘기 정말 고마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제 영국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앤 : 네. 그래야죠.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겠죠? 한스, 수많은 활동가들이 조선을 거쳐 갔지만 대부분 한계를 느끼고 떠났어요. 당신은 그러지 않길 바래요.



숙소에 돌아와서도 앤의 말들이 귓속에 맴돌았다네. 그녀의 충고는 내가 지금껏 가져왔던 의문점들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 같았네. 앤의 말대로라면 조선은 미친 곳이네. 2천3백만의 생명과 권리가 한 사람에 의해서 부정되는 미친 땅. 내가 미친 곳에 와 있다면 나는 이제 결정을 해야할 것 같네. 미친 곳에 적응되어 살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 말일세.



샘, 나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조선에 왔네. 하지만, 그 고통의 근본 원인이 질병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면, 내 로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자네의 조언이 정말 듣고 싶은 날이네. 자네가 이 편지를 받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1999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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