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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0화 아, 내아들 내나라

등나무집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9




내 나라를 떠난지 4년이 지났다. 모든 탈북자가 서울로 가는데, 가지 못해 애쓰는데 왜 여기 남아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독자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 4년을 더듬어본다.



1996년 2월 13일 서울의 언론이 <북한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과 그의 언니 성혜랑의 북한 탈출>이라는 톱뉴스를 온 세상에 날렸다. 내 동생이 떠났다는 것은 오보이고 어쨌거나 나의 탈출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나는 그때 어느 나라에 밀입국하여 아직 거처도 정하지 못하고 현지당국도 모르게 숨어있는 때였다. 놀라고 실망하고 한마디로 분했다. 적아의 논리로 보더라도 나 같은 처지의 그것도 어느 정도 내통한 탈북자를 이렇게 가차없이 팔아먹는 법이 어디있담. 2월 13일의 오보는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남한정권이 연내행사로 벌이는 반김 캠페인이다.



해설: 성혜랑은 남조선당국에서 자신의 탈출을 이용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에서는 성혜랑 모자의 안전문제 때문에 보안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리일남이 대가를 받고 남조선 언론에 통화내용 록음을 허락했다.



리일남 : 처음부터 어머니와 통화한 것은 나였다. 내가 통화할 때 어머니는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안했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정보기관의 공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모자간에 자유롭게 통화했으나 어머니는 이곳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관계당국과 계속 협조해 나와 모스크바의 대화내용을 모두 알려줬다.



해설: 다만 일남은 가족들이 안전하게 탈출에 성공할 때까지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남조선 언론은 다른 통로를 통해 성혜랑 일행이 제네바 별장에서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기사를 내보냈다.



나는 그 봄과 여름 서울에 그 어떤 연락도 못하고 남의 다락방에 숨어있었다. 어디에 정착할 것인가도 미정이었고, 그런 중에도 서울에 있는 아들 생각뿐이었다. 내가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데 무서워서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지난 가을 모스크바로 전화왔을 때 그 애가 알려준 4개의 전화번호는 이불속에서 너무 긴장하여 들은 것이라 어느게 어느건지 아리송했다.



너무 속이 타서 딸 모르게 외진 전화박스에 들어가 분당이라고 적힌 번호를 눌러봤다. 교환이 마네킹같이 회전하는 소리로 그 번호는 없다는지 바뀌었다는지.... 귀에 선 말씨가 섬뜩하여 박스를 나와 보도의자에서 한참이나 진정했다. 그 4개의 번호 중 분명 휴대폰 번호가 있었을 텐데 나는 몰랐다. 후에 그 애가 쓴 책을 보니 엄마가 내 번호를 아는데 왜 전화가 안올까 애태우며 표지사진에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잔뜩 고개를 제끼고 기다리는 모습을 실었다.



하느님 맙소사. 나는 그때까지 이 세상에 휴대폰이란게 있는 줄도 몰랐다. 아, 그때 휴대폰을 알았더라면 그 애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면, 자꾸자꾸 통화를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애는 나와 밀착되어 죽임까지 당하지 않았지 싶다.



2월 13일 황장엽 망명소식을 딸이 전해준다.



“저런 나보다 더 큰 물고기를 건졌군. 나 없어도 아니 나보다 몇배 더 캠페인 효과가 있겠는걸”하면서 맘이 좀 놓여 농담까지 했다.



2월 15일 밤 여기서는 16일 신문에서 이한영이 총을 맞았단다. 대서특필이었다.



방송 :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씨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 앞에서 총격을 받고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한영의 본명은 리일남으로 그동안 북한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성형수술로 얼굴까지 바꿨다고 합니다. 이번 이한영씨 피격사건은 북한측 소행으로 추정되며 황장엽 노동동비서의 망명에 때한 보복으로 보입니다.



온 세상이 황장엽에 대한 북의 보복이라고 서울의 보도를 받아 날리었다. 성냥갑만한 글씨로 5만의 침투간첩이 활약하는 증거란다. 나는 첫 딱지에 정보기관의 조작이 아닐까? 설마 죽이기까지야. 자체 위안했다. 나는 딸과 그 무서운 신문들을 펼쳐 놓은채 이렇게 주고받았다. “두고보자. 기만극일수 있어. 쐈다고만 하면 되니까...아니면 어디 병원에 며칠 숨겼다가 내놓거나...”쏟아져 나오는 기사를 면밀히 검토하고 사진의 두개골 총알자리를 쓸어도 보고 아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살아만 다오. 이렇게 10일간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는데 25일밤 연합통신의 보도를 딸이 넘겨준다. “엄마, 끝났어...”



서울과 일본 손에 닿는 모든 신문의 내용을 체크했다. 나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기사는 따로 모았다. 이 사건을 해명하지 않을 땐 안기부는 민중의 의심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어느 교수의 강력한 논조는 오늘까지 내가 외우고 있다.



수사의 혼선과 애매함을 풍자하는 조그마한 만화 한 장까지 다 철해두었다. 나의 정신은 이 사건을 고발하는 서릿발 같은 낱말과 그 논리 전개로 미칠 지경이었다. 슬플 여지가 없었다.



97년 가을이던가 사건발표라는 것이 또 한번 성냥갑크기로 내 아들의 이름을 찍어냈다. 김정일의 생일 진상품으로 북한 공작조가 한짓이라는 증거부족인 신빙성 없는 사건해명이었다.

여하튼 내 아들의 죽음은 지금도 미해명이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져 지금 인터넷에는 자주 그 의문사의 내막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간이 가면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까... 더 맘 놓고 말 할수있는 날이 오면 양심선언이라도...



해설: 1997년 남조선 안기부는 부부간첩 최정남과 강연정을 체포했다. 이들 간첩의 진술을 토대로 이한영 테로 사건은 북조선 사회문화부 소속 특수 공작조인 순호조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나는 이 책에서 아들의 죽음에 대해 건드리지 않으려했다. 주관을 피하려는 생각과 무엇보다 그때를 되살리기 싫어서. 그래서 초고에는 후기를 쓰지 않았다. 아들의 얘기를 빼고 지난 4년을 무얼 쓴단 말인가.



좀더 독자에게 친절 할 수 없느냐. 독자는 한때 떠들썩했던 나의 현재를 알고 싶어한다고 부득부득 후기를 쓰란다. 에둘러 쓰는 재간이 없어서 다 털어놓고 만 셈이다. 써 놓고 나니 후련하다. 불쌍한 내 아들의 그 억울한 죽음을... 내가 호소해 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랴...



내가 이 책을 쓰는 전 과정에서 체험했던 분단의 아픔은 곧 아들에 대한 아픔이었고 등나무집의 마지막 비극은 남북대립의 마지막 비화가 아닌가 싶다.



남북이 서로 원수였던 수치스러운 역사가 곧 끝나고 잊을 수 없던 통일의 기운이 이렇게 열린 시점에서 나는 자신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무엇을 더 생각하고 무엇을 더 말하랴. 개인의 그 어떤 슬픔도 원한도 민족의 화해, 통일의 대세 앞에는 용해될 수 밖에 없는 작은 것이다. 이 흐름과 이 감격으로 나를 치유하자.



해설: 성혜랑이 이 수기를 발표한 2000년에 최초로 북남수뇌회담이 열렸다.



하룻밤에 열두번도 누웠다 일어났다 뒤척이며 누가 죽였을까 내 아들을. 그 곱고 반듯한 이마에 누가 총알을 박아 넣었을까. 원한에 몸부림 친 나날을 무슨 말로 헤아리랴. 슬픔보다 괴로운 것은 원한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지금 내나라에서 불어오는 훈훈한 소식에 눈물지으며 어느새 그 독을 다스리게 되었다. 다 잊자. 지나간 일을. 화해와 통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원한을 푸는 것이 미움을 버리는 것이 지금 남북겨레의 과제임을 누구보다 나는 실감하고 있다.



정이 많고 근면하고 인심 좋은 우리 겨레, 지난날을 옛말하며 왕래하는 날이 곧 올 것 같구나. 그러면 나도 내나라에 가리라. 한평생 그렇게도 그립던 내 고향 서울 등나무집에도, 나의 청춘을 노래해준 대동강에도 찾아가리라. 잊을 수없는 그 좋은 동무들도 다시 만나리.

내 아들의 묘소에도... 일남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너를 찾아가서 너의 집에 채송화를 잔뜩 뿌려주마. 아, 나의 아들 내 나라는 얼마나 먼 곳에 있는가...



내레이션: 성혜랑과 딸 이남옥의 행방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조선으로도 북조선으로도 갈 수 없는 이들은 언제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등나무집 랑독을 마칩니다. 그동안 청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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