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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8화 아들과 통화하다

등나무집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9




1995년 10월 17일 오후 1시 국제전화의 긴 신호가 울렸다. 모스크바는 시내, 국제전화 신호가 구별되어 있었다.



성혜랑 여보세요?

리일남 사모님 바꿔주십시오.



귀설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집에 대고 이렇게 부를 사람은 없었다.



성혜랑 “무슨... 사모님이라니요?”

리일남 “사모님 말입니다 그래 그 집이 바빌로바가 아니란 말입니까?”

성혜랑 맞아요. 그런데 어디에 전화를 하신거죠?



하고 대답했더니 번지까지 정확히 맞춰 되묻는다.

말소리는 전혀 생소한 서울말투. 목소리를 알 수가 없었다.



리일남 전화받는 분은 누굽니까?

성혜랑 동무는 누구예요? 자신의 신분을 밝히세요!

리일남 혹시 정남이 이모가 아닙니까?

성혜랑 도대체 동무는 누구에요?

리일남 나에요. 사모님 조카 영철이에요.



이것은 내 아들 일남이의 외교여권 이름이었다.



누가 거짓말을 둘러대는 게 아닌가? 일남이가, 14년동안이나 죽은듯 숨어있던 그 영리한 애가 이런 조잡하고 터무니없는 행동을 할 리가 없다. 여기다 대고 상대가 누군지 확인도 안하고 대뜸 제 이름을 대는게 일남일 수는 없다. 자기의 출현이 어떤 폭탄이 될거라는 걸 모를리 없는 애인데.



나는 “동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몰라요.”하고는 수화기를 놓았다.



관리원들이 옆방에서 모두 듣고 있을 것이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나의 따따부따. 안타깝게 물고 늘어지는 불쌍한 목소리, 번개처럼 일남이가 아닐까 하는 자각이 들어 내 방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가슴뼈가 휘도록 들먹이는 초조한 순간을 경대 앞에서 기다리는데 전화가 안온다.



아뿔싸, 전화번호를 잘못 가르쳐 주었다. 어쩌나.



복도에서 다시 신호가 울린다.



나는 “전화번호 잘못 말했어요.”하고는 다시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관리원들을 의식하며 일남이가 아닌척 경어를 썼다.



저쪽에서 “그랬댔구나 글쎄 안 나와” 하는 이 한마디에서 그 부드럽고 처진 억양, 가련하고언제나 무방비이던 일남의 천성이 알려진다. 내방으로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리일남 “엄마 나야~ 왜 그렇게 냉정하게 받어? 엄마 틀림없어?”

성혜랑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할아버지 이름은?

리일남 엄마 나야 나. 나.

성혜랑 묻는 말에 대답해요.

리일남 할머니 김원주, 할아버지는 성유경..... “엄마 나야, 내 새끼손가락이 안으로 꼬부라 졌어. 엄마 닮아 우리식구 다 안으로 꼬부라졌잖아. 내 딸도 안으로 꼬부라졌어....”



더 이상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이 애는 이런 위험한 방법으로 14년 만에 왜 전화를 걸었을까? 당국이 시켰을까? 우리의 대화는 도청될 것이다.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박하게 이 애가 전화를 걸지 않으면 안 되었을 처지에 내가 맞춰야한다는 가슴 저린 모정과 최대한의 안전을 모색해야 하는 엇갈림 속에서 전자적 속도의 사리판단을 타고 내 아들을 보호해 주십사 호소를 깔며 정보를 흘리는 의도적 ‘실수’를 했다.



이것은 남한당국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내가 탈북하려고 한다는 것을 전하면 살길이 막힌 내 아들을 보살펴 주겠지라고 타산했다. 이것은 분명 실수였다. 분별을 잃을 정도로 가난한 내 아들을 부추겨 전화를 걸게 하고 그것을 녹음하여 특종의 명성을 노린 상업주의 언론이 붙어 앉아 시킨 전화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며칠간 매일 새벽 5시에 전화가 왔다. 나는 이불속에서 전화를 받았다. 일주일간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사람이 지탱할 수 있는 긴장의 한계지수는 얼마인가. 좀 더 지났더라면 나는 순간에 돌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바빌로바 집은 방이 다닥다닥했다. 관리원들은 전부 귀이고 그들은 보위원 이상 각성된 선발되고 훈련된 ‘죽어도 공산당’들이었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음을 느꼈다. 이때 내 아들에게 전화를 걸게하고 감청한 녹음테이프가 거침없이 남한 일간지들에 공개되었다는 것을 나는 오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언론의 윤리도 공정성도 제껴 놓았다. 감청내용을 팔아 특종의 명성을 날린 기자가 있는가 하면 그 뒤에서 내 아들은 도덕적으로 참패당했다. 그리고 14년만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과 나눈 우리만의 말, 엄마와 아들의 정은 무참히 능욕 당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그래도 나는 그때 아들과 말을 할 수 있지 않았는가. 그때 그 애는 살아 있었다. 엄마, 엄마 나를 불렀다. 그 잔인하던 14년은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애가 없는 텅 빈 하늘아래 햇빛은 내려 무엇하며 바람은 왜 설렁이는가. 그 이상 더 쓸 수가 없다.



일남이와 전화를 주고 받던 어느날 새벽 그 애에게는 할아버지 뻘인 나의 아저씨가 모스크바 학회에 오는데 만나라는 것이었다. 나는 “만나고 말고...”하며 반색을 했다.



그러자 시브적이 외삼촌도 어쩌면 같이 갈 수 있다고 한다. 그 애가 어떻게 말의 순서를 기술적으로 잘 얼버무렸는지 나는 학회에서 초청받아 온다는 말만 인상에 남아 반갑기만 했다. 수화기를 놓고 곰곰이 생각하니 이상했다.



(해설: 작가의 오빠 성일기는 1949년 조선로동당의 유격대로 나갔다가 체포돼 남조선에 살고 있었다.)



나의 오빠는 당국의 승인없이 못 올 것이고 큰 목적이 없이 당국이 선심을 쓸 리가 없었다. 허둥지둥 국제전화소를 찾아갔다. 서울에 전화가 안 된다. ‘오빠가 어떻게. 국가보안법은 어쩌고?’ 당국의 개입 없이는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무턱대고 떠나오면 나는 어떡한단 말인가. 나는 북조선 공민인데... 47년 만에 오빠를 만나러 가는 길이 적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정치적 각성 때문에 기쁨이나 감동 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었다.



까짓것 다 쑤어놓은 죽이다. 안기부면 안기부, 보위부면 보위부 나는 그들을 만나야한다. 47년이란 말이다. 누가 시비해! 누가 뭐래도 만나겠다.



만나기로 한 코스모스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방. 오빠는 나를 향해 새끼 손가락을 내보였다. “우리는 다 어머니를 닮아 새끼손가락이 안으로 꼬부라졌지.”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눈물을 삼켰다. 내 앞에는 생소한 큰소리로 떠드는 중늙은이가 마주 앉아있었다. 그런데 그는 펑펑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했던지 시시부시한 소리를 몇 마디 했던 것 같다. 마음은 우주. 말은 거미발. 50년이란 세월 끝에 말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 어떤 의미도... 한계를 넘은 감정은 마비된 채 멎어 있었고.



오빠의 모스크바 방문은 나의 탈출을 권고하는 남한당국의 배려였을 것이다. 나의 아들 일남이가 언론에 노출된다고 우리 모녀신변이 위험하니 속히 떠나라고. 이미 서방에 나가있던 딸을 평양에서 데려와야 한다고 둘러댄 것은 시간을 얻기 위해서였고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원작: 성혜랑

극본: 최수연, 리유정

연출: 박은수, 남유진

낭독: 최연수, 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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