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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6화 관저에 갇힌 아이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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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9




김정일: 정남이 너, 이따위로 생활 할거야. 남옥이 넌 뭐하고 있었어. 정남이 통제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1990년대 초 어느날 밤이었다. 현관에서 고함치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앉았다. 정남이 목소리는 제 아버지를 꼭 닮아 그 애가 울화통을 터뜨리는 소리는 제 아버지 고함과 같았다. 김정일 비서가 집에 들어왔다고 관리원이 달려와 알린다.



현관으로 꺾어지는 복도에 들어섰을 때 두 아이가 나란히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김 비서의 목소리가 악을 쓰고 있었다. 그 애들 뒤에 가 서니 그의 화풀이가 나에게 향해졌다.



김정일: 이모는 뭐요, 무엇을 하고 있소, 애들이 잘못하면 통제를 해야지 이게 뭐요!



정남이가 저녁마다 친구들을 불러다 놀았는데 그 밤 자기 아버지가 이렇게 밀입국하여 들킨 것이다. 정남의 생활을 김비서에게 보고하라고 통제역으로 남옥이의 방을 정남의 앞방에 정해주고 직통전화를 걸 수 있도록 했었다. 사실 남옥이의 이런 임무 때문에 정남의 행동은 많이 자동 통제되었으나 남옥이가 저를 잡아먹지 않을 줄 알고 자기의 놀이를 남옥이 앞에 합법화해버렸다.



남옥: 정남이 너, 자꾸 그러면 빠빠게 이를 꺼야.



정남: 정말이야. 하나도 안 무섭다.



남옥: 진짜로 전화 할꺼야.



정남: 해봐, 해봐,



남옥이는 처음에는 전화통을 드는 방법으로 위협했으나 너무나 불쌍한 정남이었다. 일회의 고자질로 무슨 해결이 된단 말인가.... 친구 없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애 아버지의 책망은 가혹하고 감정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울며 용서를 빌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정치적 당적 자기비판의 마지막 말들을 죄 골라 했다. 85세의 할머니도 어느새 내 뒤에 와서 두 손을 모으고 서 계셨다. 다 큰 애를 울타리 안에 숨어있으라고 그 어떤 생활도 마련해주지 않으면 그 애가 어떻게 산단 말인가....



수령님의 눈치를 보던 70년대도 아닌데 그 애를 ‘절대비밀’화 하는 명분이 무엇인가... 해결책을 찾아주지 않으면 정남이는 서른이든 마흔이든 이 생활을 계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정남이가 불쌍해서 설움에 겨워 흐느꼈다.



빠빠께 야단을 맞은 두 아이에게 탄광에 가서 노동할 준비를 하라는 어명이 떨어졌다. 물자를 안주겠으니 소대에서 타다먹으라는 물질적 제재도 내려졌다. 우리의 식료품은 중앙당 4과에서 타다먹는 ‘호위식품’이었고 소대에서 타는 것은 군대보초들이 먹는 된장, 간장, 소금,콩 정도였다.



91년 그때는 벌써 군대에서 공급되는 식료품도 열악하여 그 흔하던 명태나 미역 같은 것도 끊어진 지가 오래였다. 과일도 기름도 없었다.



나는 저금을 찾아서 주머니에 두둑이 넣고 농민시장이라는 데를 모조리 찾아 헤맸다. 말이 농민시장이지 거기에는 닭알 몇 알도 사기 힘들고 까치 먹던 사과 한 알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귀국동포들이 물물거래를 하기 때문에 돈은 아무 가치가 없었고 모두 많지 않은 먹을 것을 감추고 빈둥거리며 귀국동포들이 들고 나오는 물건만 눈독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때묻은 옷, 때 묻은 머리, 신발이 말이 아니었다.



그 건전하고 성실하던 우리 인민의 정직한 얼굴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제라도 곧 도적놈이 될 것 같은 범죄성 표정과 닳고 닳은 장사치같은 비사회주의 인간뿐이었다.



애들이 군대배낭을 얻어다 놓고 노동화며 장갑이며 군대물품을 구해다 배낭을 꾸리고 각종 약을 챙겼다. 일본제 아사메리 내의는 노동현장에서 입기엔 고급이라고 사회에서 공급되는 두꺼운 내의를 중앙당 공급소를 통해 사왔다.



애들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뜨기까지 했다. 적어도 우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타인의 생활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 아닌가. 내 땅 안에서 이 울타리 바깥세상을 접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욕망이었다.



할머니는 그때 85세인데도 사고가 정연하고 우리보다도 수가 높았다. 근심스럽게 대기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이 학대를 삭이느라 불안해하는 나를 손짓해 부르셨다.



할머니: 혜랑아 이리좀 와보라.



가까이 간 나에게 귓속말처럼 목소리를 낮추시고 부드럽게 웃음 지으셨다.



할머니: 정남이를 내놓을게 뭐냐. 너는 무슨 근심을 하니... 그 애가 누구라고 탄광에 보낸단 말이냐.



하시며 손을 가볍게 저으셨다. 정말 그런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두 달쯤 지난 다음 주방장에게 전화가 왔다. 왜 부식물 청구서를 내지 않는가 욕하더란다. 이때도 할머니께서는 정확한 풀이를 하셨다.



할머니: “성이 나서 한마디 아무케나 해놓고는 잊었지 뭘 그래. 이제 생각이 난 게지. 깊이 생각할 것 없다. 그의 성격을 알지 않니.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이런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말씀은 20년 동안 그 까다롭고 무서운 주인 밑에서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때로 겁에 질리고 때론 절망스럽던 한시도 편치 않던 전전긍긍한 관저생활을 이완시켜주셨다. 또 그 어떤 순간의 어려움도 수용하여 넘기면 별게 아니라는 낙관을 심어주었다.



91년 가을 내 인생과업은 딸 시집보내는 일밖에는 없는 듯 했다. 남옥에게는 이렇게 갇힌 관저생활에서 결혼이라는 출로밖에 없었다. 결혼하여 이 울타리를 나가면 그래도 인간사회와 접할 것이 아닌가. 나는 혜림이가 있는 기간 재빨리 손을 써 남옥이의 결혼상대를 구해줄 것을 청했다. 공부는 더 시킬 수 없을 것이고 아이에게 아무런 생활의 출로도 없을 바에는 혼기를 놓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모든 문제가 최고 집권자를 거쳐야만 해결되는 우리 생활 질서는 중중첩첩 가시밭길을 헤쳐가기보다도 더 힘들었다. 돌을 굴려 올리는 것보다도 나 자신 오를 수없는 절벽을 대하고 있는 막막함 뿐이었다. 돌이라면 굴려나 보지...



그가 인제는 우리 집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만날 수 도 없고 나라의 존망을 지휘하는 그 바쁜 사람에게 생활의 사말사를 제기하기가 민망도 했으려니와 귀찮게 구는 것이 죄스럽고 무서웠다.



그래도 혜림이가 평양에 나오면 전화가 통하고 혜림이 보러 들어오기 때문에 그 애를 통해서 일체를 해결 받아야 되는데 그 가짓수는 빨래비누로부터 시작해서 애들의 장래문제를 해결하는 운명적인 것까지를 포괄한다.



해설: 남옥은 김정일에게 몇 번의 총각명단을 받았으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이후 성혜랑이 직접 나서서 겨우 맘에 드는 상대를 찾았으나 김정일이 승인해주지 않았다. 김정일의 연회에서 기쁨조였던 여자가 형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상대를 성혜랑 모녀는 옷걸개라고 불렀다.



1991년 12월 26일 남옥이를 모스크바로 보내라는 김 비서의 명이 과장에게 하달되었다. 모스크바에서 그 애 이모가 부른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있는 편지마다 나의 안타까움을 그에게 비쳤었다. 김비서는 옷걸개와의 관계가 진척될 것을 우려했는지 혜림의 부름에 선뜻 그 애를 출발시킨 것이다.







원작: 성혜랑

극본: 최수연, 리유정

연출: 박은수, 남유진

낭독: 최연수, 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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