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세계사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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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축제에서 비극으로, 뮌헨 올림픽 참사

20세기 세계사 사전
작성자
김지영PD
작성날짜
2022-06-23 13:29

 

20세기를 뒤흔든 세계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시대별로 전해드리는 ‘20세기 세계사 사전’, 저는 하태성입니다. 오늘은 1970년에 초반에 일어난 사건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72년- 세계인의 축제가 엄청난 비극으로, 뮌헨 올림픽 참사!

1972년 9월 5일 새벽 4시, 뮌헨 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던 시기! 운동복을 입은 8명의 무장괴한들이 올림픽 선수촌 담장을 넘어 이스라엘 선수들이 묵고 있던 숙소로 침입합니다. 괴한들은 자신들을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단체인 ‘검은 9월단’이라고 밝히며 9명의 선수들을 인질로 삼고, 이스라엘에 억류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포로들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대테러부대가 없었던 서독은 일반 경찰들을 작전에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엉성하고 어설픈 협상은 테러범들의 심기를 불편하게만 했죠. 더 나아가 방송국에서 이 사건을 생중계를 해버리는 바람에 테러범들은 경찰의 행동을 하나하나 다 TV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이들은 헬리콥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서독은 테러범들을 보내줄 마음이 없었기에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 하면서 기습을 하기로 결정하죠.

시간이 지나 테러범의 요구대로 헬리콥터가 착륙했고, 이는 곧 구출작전의 시작을 말했습니다. 헬리콥터가 함정임을 알아차린 테러범들은 경찰들과 총격전이 벌였고, 경찰은 테러범들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서독 경찰 1명이 전사했으며 인질로 잡혔던 이스라엘 선수 9명도 전부 사망하고 맙니다. 평화의 축전인 올림픽이 피로 물들어 버린거죠. 뮌헨 비극은 세계에 테러리즘의 위험을 환기시키는 경고음이었으며, 또한 팔레스타인 문제가 서방과 아랍 세계의 대표적인 갈등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4년- 포르투갈의 민주화! 카네이션 혁명!

포르투갈은 오랫동안 살라자르의 독재 아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포르투갈 식민지 국가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오랫동안 식민지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죠. 결국 살라자르는 1968년 실각하지만, 그와 비슷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 카에타누가 그 뒤를 잇게됩니다. 카에타누 정부는 여론을 돌리기 위해 군 예산의 삭감과 함께 여러 개혁 조치를 발표하는데요. 그러나 이 조치는 많은 장교들의 반대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때 소련의 영향을 받은 포르투갈 국내 좌익세력이 군부 내부까지 침투했고, 이들은 쿠데타를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신체제 건설을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 군의 장군이었던 안토니우 히베이루는 식민지 전쟁의 상대국들과 하루빨리 협상을 개시해야 한다고 밝힐 정도였죠. 깜짝 놀란 카에타누 정부는 그를 해임했지만, 안토니우 히베이루는 이미 여러 공적을 세운 전쟁영웅이었기에 카에타누의 선택은 오히려 청년 장교들의 분노를 부추깁니다. 

그리고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의 국영 라디오에서 민중 저항 가수 제카 아폰수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혁명 쿠데타가 개시됩니다. 그날 밤, 쿠데타 세력은 전국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였고, 많은 시민들은 혁명세력을 응원한다는 의미로 군인들의 소총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주었습니다. 이후에 빨간 카네이션은 비폭력 혁명을 상징하게 되었고, 4월 25일은 ‘자유의 날’로 불리며 포르투갈의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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