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 방송정보매주 월요일 저녁 10시30분 방송 | 기획 특집
  • 출연이광백

증언33 - 생계 수단이 된 밀수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7-12-04 17:08


<시즌2>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눈물의 기록, 정의의 기록'
증언 33 - 생계 수단이 된 밀수

당국이 주민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지 못한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당국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이동하거나 비공식 시장에서 거래하는 등의 주요 생계유지 수단을 사실상 범죄행위로 여기고 처벌하고 있습니다. 북에서 4년간 밀수업을 하다 고초를 당했던 박주희씨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1.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어디서 사셨나요?

양강도 혜산시에 살았어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국경이랑 가까운 곳이죠. 

_ 북한을 떠난지는 언제인가요?

2012년에 북한을 떠났고 현재 대한민국을 정착한 지 5년 정도가 됐습니다. 어제 같은데 벌써 5년이네요.

_ 그 때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단 자식의 미래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너무 경제적으로 고달프니까 힘들었어요. 나도 나로서 새 삶을 살자했고 3년을 준비해 탈북을 했어요.

2. 북한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났어요. 저희 때는 나름 사회주의가 좋았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예술전문학교에서 화술을 전문으로 했고, 하다 보니까 결혼 전에는 방송원을 하면서 청년동맹 강사를 겸했어요. 시집와서 그만두고, 북한에서는 조직에 망라가 돼야 해서 (결혼 후에는) 혜산 신발공장에서 선동강사를 했어요. 너무 여건이 안 좋아져서 2008년부터 중국과의 밀수업에 뛰어들었고 그 후 대한민국으로 입국을 했습니다. 

_ 당이나 국가가 정해준 직업이 생계유지가 어렵다 보니 밀수를 시작하셨군요. 어떤 걸 주로 밀수 하셨나요?

밀수라는 게 딱 찍어놓은 물건이 없어요. 다양한데 봄철에는 약초 구리 동 금 짐승 가을철이면 양이나 염소를 대대적으로 중국에 넘겼고 봄에는 약초를 넘겼어요. 

_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파는군요?

우리가 선택할 여건이 안돼요. 중국 파트너가 무조건 부채마(마과의 산야초) 해달라 하면 저는 중간사람을 만나서 부채마 구해달라고 요청을 하는 거예요. 중국사람들이 산으로 가라고 하면 산으로 가고 땅으로 꺼지라고 하면 꺼져야 하는 거예요. 

_ 그럼 밀수는 언제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저는 2008년부터 시작 했어요. 북한을 떠나는 2012년까지, 탈북한 전날에도 밀수를 했어요. 

_ 북한과 중국 사이를 오고 가기도 하나요?

못가죠. 밀수꾼은 왔다가지 않고 (가게 되면) 짐꾼들이 가는 경우가 있어요. 고철 50kg씩을 메고 30~40명씩 가는 거예요. 강 하류를 통해서 가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전화를 해 파트너에게 일정을 알려주는 거죠. 그럼 파트너는 국경경비대에 돈을 찔러주고 약속 장소에 가는 거예요. 밀수꾼들은 사전에 전화로 연락을 하지만 짐꾼들은 고철을 약속한 중국 지역에 두고 다시 압록강을 건너 와 품삯을 받는 거죠. 

_ 밀수업자들이 직접 넘는다기보다는 짐꾼들이 강을 건너는군요?

중국사람들이 고무배를 타고 옵니다. 북한 영토에 발을 들여놓지는 않아요. 강에서 짐을 가지고 돌아가는 거죠.  

3. 그때도 불법이기 때문에 처벌 받는다는 것을 알았을텐데 발각됐을 때는 주로 어떤 처벌을 받게 되나요?

일단 물건을 넘기지 못하고 국경경비대한테 발각 됐을 때는 찍소리 못하고 해당 도 보위부 집결소로 호송이 돼요. 일단 물건을 넘긴 다음에 본인이 넘어오다가 잡힌 경우에는, 물건이 없기 때문에 집결소에 호송을 안해요. 주로 잡는 게 누구냐에 따라 가는 곳이 달라져요. 경비대가 단속을 했으면 경비대 감옥에 가야하고 보위부가 단속하면 집결소로 가야합니다. 다 다르죠.

_ 밀수를 단속하는 사람이 2중, 3중이군요. 

한 4중으로 봐야 해요. 국경경비대, 국가안전보위부, 경찰, 민간검열대가 있어요. 

_ 심지어 물건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겠네요. 그런데 물건을 빼앗기면 생계가 크게 위협당할 수도 있겠어요.

잡히면 저희는 죄인이니까요. 보위원이 때리고 그래요. 그런데 아픈 것보다 내가 지금 물건을 빼앗기면 내 가족이 어떻게 살까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죠. (그래서) 항상 물건을 넘기는 게 우선이지 사람이 잡히는 것은 크게 고민을 안했어요. 

4. 오히려 생계 걱정이 먼저인거군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도 단속에 걸리거나 체포되신 적이 있나요?

북한이라는 것은 철창 없는 감옥이잖아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우리 밀수꾼들도 중국사람들과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중간에 커버꾼들을 둡니다. 그런데 이 커버꾼들이 어떻게 보면 북한 보위부나 보안원들한테 흡수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북한 경비대에 돈을 주고 밀수를 하는데 이 자료를 보안원이나 보위부에 넘겨주고 밀수를 하려는 순간에 창을 치는 거예요. 한국말로 뒤통수를 친다는 거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수없이 잡히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저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내가) 도망가면 막 잡으려 따라오고 그랬어요. 나는 압록강의 고무배에 (물건을) 던져만 주면 돼요. 그러니까 보안원과 보위부보다 더 빨리 뛰어서 고무배에다 짐을 던져준 뒤에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그럼 따라온 보안원과 보위원이 화가 나서 저를 막 때렸죠. 얼마나 맞은지 몰라요. 북한에서 살 당시 제가 40kg 정도로 작은 체격이었어요. 압록강 구석에서 여러 명한테 구두발에 채여 맞으면서도 저는 안도했어요. ‘우선 물건은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화가 안 풀렸는지 저를 끌고 가서 보안소 감방에다 처 넣었어요. 감방에 가니까 저 말고도 다른 밀수꾼들이  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엄청난 인권침해인데도 그 당시 감방에서 물건을 보내고 잡힌 사람들은 다행이라고 웃었어요. 

보안소 감방에 들어갔는데 아예 밥이라는 것도 안주고 화장실도 못 가게 했어요. 분주소는 다른 곳보다는 나았어요. 관할지역에 있어서 뇌물을 주면 빼내올 수가 있으니까요. 일단은 거기서 여러 번 단속이 되다 보니까 노하우가 생겼어요. 일단 북한 분주소에 들어가서 물건을 회수 당하지 않을 경우 다 거짓진술로 했어요. 물건, 증거가 없기 때문에 거짓으로 진술하는 거예요. 사실대로 다 진술을 해버리면 감옥에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계속 거짓진술을 하니까) 그 사람들도 엄청 윽박을 질러요. “야이 쌍간나”라며 막 겁을 주는 거죠. 그럼 저희는 귀를 열고 그냥 짖어라 해요. 때리기도 하지만 언어적 폭력까지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귀에서 뭐가 흘러나오는 느낌도 들고 발동기 소리(귀에서 왕왕 울리는 소리)도 들리고 나중에는 매를 너무 맞아서 느낌이 없었어요. 결국엔 물건이 안 잡혔으니까 “이제 한번만 더 걸리면 죽는다”라고 경고를 하고 보내주더라고요. 밀수를 하다 잡히면 이렇게 반복이 되는 거죠. 

_ 몇 번 정도 단속받아서 분주소라든가 집결소라든가 하는 데에 갇혀 있었나요?

밀수하다가 갇힌 건 한 열 번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매를 맞아서 아팠던 기억보다 2012년 겨울에 제가 짐승을 넘겨줬어요. 염소랑 양을 넘겨주고 돌아오다가 국경경비대한테 잡혔어요. 그때 살얼음이 막 졌는데 넘겨주는 과정에서 양이 안 가려고 해서 강까지 가서 넘겨줬어요. 그러다 보니 옷이 젖었는데 옷이 젖은 상태에서 잡혀서 저희를 일반 감방이 아닌 창고 같은데다 넣었어요. 저희 지역이 추울 땐 영하 30도 까지 내려가요. 발이 얼었는데 창고에 들어가니 콘크리트 바닥이라서 너무 추운 거예요. 거기서 10분 있는데 심장이 어는구나 싶었어요. 너무 추워서 그런지 나중에는 잠이 오더라고요. 6~7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풀어줬어요. 이게 “한 번 더 걸리면 얼어 죽을 줄 알아”라는 식이었어요. 지금도 악몽처럼 생각이 나요.

_ 그렇다면 보위부한테도 잡힌 적이 있나요?
 
네, 한번이요. 저는 집결소까진 안가고 밀수 짐을 함경남도에서 실어오다가 중간에서 보위부 초소에서 잡힌 거예요. 보위부 10호 초소라고 있어요. 보위부 초소인데 거기에는 임시감방이라는 게 있어요. 쇠살창이 있는데 제 한 팔과 쇠살창이랑 같이 묶었어요. 그럼 앉지 못하고 계속 서 있는 거예요. 잡히고 그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풀어줬어요. 그 때도 겨울이라 엄청 추웠어요. 또 화장실도 안보내주고 두 시간에 한 번씩 보위원이 들어와서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됐지? 나와서는 솔직하게만 말해라. 그런데 솔직하게 안하면 백날이고 천 날이고 놔둔다.”라고 말했어요. 정말 그때 힘들었어요. 북한에서는 보안소 군대나 다 비슷한데 보위부가 제일 가혹하죠. 사람한테 물리적인 처벌도 주지만 정신적인 협박을 많이 해요. 제가 불지 않으면 가족까지 쫒아서 고생시킨다고 했어요.

5. 일종의 협박과 회유를 하는군요. 당시 북한 당국은 왜 이렇게 밀수를 막았을까요? 사실상 이 방법이 없이 생계가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생존을 위해서도 작용하지만 자본주의가 침투하기도 하는 거죠. 한류가 들어오는 것도 밀수니까요. 밀수를 통해서 CD나 USB를 날라서 전파를 하는 거죠. 일단은 경제적인 불법도 꺼리겠지만 그것보다는 이게 사상적으로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문화나 자유로움이 중국을 통해서 밀수꾼을 통해서 전파되는 거죠.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밀수꾼을 감시하고 제한했던 거 같아요.
      
지금까지 박주희씨를 통해서 생계를 위해 밀수업에 내몰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어려움과 인권 침해를 당하는 사례를 들어봤습니다. 오늘 증언 감사합니다.

- 2부 -

사실상 배급제가 완전히 무너진 북한에서 주민들은 살아갈 방도를 스스로 찾아야합니다. 생계 유지를 위해 밀수를 택하고 그 과정에서 고초를 겪은 박주희씨의 증언 들어봤습니다. 이에 관한 전문가의 인권법적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정현 교수 전화연결돼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박주희씨의 오늘 증언을 통해, 어떤 인권법적 문제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요?

우선 박주희씨 경우처럼 배급제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국가가 배정해준 직장생활 자체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고, 그래서 먹고살기 위한 목적으로 한 일련의 행동들을 국가가 별다른 대책없이 억제하고 처벌만 하는 것은 넓게 보면 식량권 침해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러나는 보다 구체적인 인권의 침해는, 이렇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내에서 또 국외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가 북한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북한도 당사국인 자유권규약 제12조에서는 “합법적으로 어느 국가의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영역 내에서 이동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또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로부터도 자유로이 퇴거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고국을 포함해 출국할 권리까지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있습니다. 일부 법률에 의해 이런 자유는 제한받을 수 있음에도, 이렇게 전면적인 이동의 자유의 부재는 관련 인권 침해가 확실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매번 나오는 문제이지만, 밀수나 도강을 하다가 붙잡힌 사람들에 대해 보위부 등 당국의 여러 주체가 때리고 폭언하고 일부러 추위에 떨게 하고 가족의 안위에 대해서까지 협박하는 등의 가혹행위를 하는 것은 고문 및 기타 비인도적 취급을 금지한 자유권규약 제7조의 명백한 위반으로 판단됩니다.

 네, 북한에서 침해받고 있는 식량권과 이동의 자유, 고문 및 가혹 행위에 관한 전문가 의견 들어봤습니다. 조정현 교수님 감사합니다.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