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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39 - 여성인권 : 임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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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8-01-22 17:46


<시즌2>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눈물의 기록, 정의의 기록'
증언 39 - 여성인권 : 임산부

오늘은 북한 여성들의 모성 보건, 임신이나 출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려운 점, 그 과정에서 있는 인권유린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1. 오늘 함께해 주실 조유리씨 나와계십니다. 안녕하세요? 북한에선 어느 지역에서 사셨어요?

1986년도에 아오지라고 (함북) 경흥에서 출생해 라선시로 이사가서 살다 16살에 군에 나갔어요. 평양인민무력부 통신국에서 군사복무를 하다 2009년에 전역하고 이후 라진에서 무역하다 2014년에 탈북했습니다. 군 생활을 16살부터 7년간 했죠. 2014년도 2월에 탈북해서 한국에 7월에 도착했어요. 북한에선 딸이 하나 있었고 남편과 셋이서 살았습니다. 

2. 그런데 탈북은 왜 하시게 된건가요?

엄마 얼굴을 16살 때까지 밖에 볼 수 없었어요. 엄마가 무역을 하셨는데 조직생활 안했다는 이유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유로 검찰소나 보위부에서 자주 엄마를 데려가 고문을 했거든요. 16살까지 엄마를 보고 군대 나갔다가 전역해 돌아와서는 감옥에서 밖에 엄마를 볼 수 없었어요. 면회 가서 엄마를 보면 너무 맞아 이가 다 부러져있고 죽기 직전인 그런 모습이었어요. 그러다 엄마가 너무 많이 맞아 열이 나는데 해열제를 계속 못 먹었나봐요. 제가 해열제를 갖다 줬는데도 옆에 쌓아만 두고 한알도 주지 않은거에요. 그래서 결국 폐가 다 썩어 들어가고 거의 뼈에 가죽만 남은 상태에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를 데리고 나가라고. 

(엄마가 죽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데도 땅에 묻어 드린 이후 북에서 사는데,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어요. 엄마로 인해 저한테 감시가 붙는거에요. 그렇게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나라에 반감이 있지 않을까. (제가) 평양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중국에 국가 기밀을 팔아버리지는 않을까하고 저를 의심했던 거죠. 북한 당국은 인민들을 그렇게 항상 의심해요. 그래서 임신했을 때도 계속 잡혀가고 출산하고도 계속됐고. 당시 공포감이… 그 후 말 겨우 떼는 딸이 눈에 밟혔어요. ‘그 딸을 내가 지킬 수 없겠다.’ ‘북한이라는 나라에선 나도 언젠가 우리 엄마처럼 마지막까지 딸을 지키지 못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갈 수도 있겠다’하는 공포감에 하루하루 악몽이었어요. 자다 깨도 그 생각, 애를 보고 있어도 그 생각에, 이 애만은 앞날을 창창하게 해주고 싶어 탈북하게 됐습니다.

3. 이야기 중에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감옥에 가서 고문을 당했다고 하셨나요?

한국에서는 상상 할 수도 없는 이야기죠. 여기선 임산부에게 조금만 폭행을 가해도 뉴스에 나올 법한데. 당시 제가 6개월이 지나서 배도 나오고 했는데, 임산부인거 알면서도 잡아가는거에요. 북한 법규정에도 ‘임산부는 구류할 수 없고 형을 내릴 수 없다’라는 규정이 있지만, 그걸 다 무시하고 잡아가는 거에요. 가서는 창문도, 빛도 없는, 그냥 콘크리트로 돼 있는 작은방에 가두고 소래(대야) 하나만 주는거에요, 거기다 대소변 보라고. 조사도 안하고 먼저 겁을 주는 거에요. 

당시 저는 임산부여서 매끼니 먹어야하고 화장실도 자주 가고 싶은 그런 때인데. 거기에서 거의 일주일씩 잡혀 있고 얼굴에 가죽만 남을 상태로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어요.음식은 하루에 한번 주는데, 문을 툭 열고 자기네들도 안쪽이 더러우니 밥만 집어 던져요. 그때 제가 막 할말을 하죠, 나를 왜잡냐, 나가고 싶다, 배도 아프고 메스껍고 하다 그러면 문을 쿵 닫고 나가버려요.

4. 당시 조유리씨를 왜 가둔거에요?

(당시 제가) 중국인들과 장사를 했는데, 법에서는 무슨 장사를 하면 보위부에 다 적어내고 얼마를 팔고 했는지 신고하게 돼있어요. 그런데 장사라는게 어느날 옆집사람이 기름 부탁하고 뒷집에서 쌀 부탁하고, 또 보위부나 보안서에 뇌물도 바쳐야하고요. 그러다보면 (신고를) 잊어버릴 때가 있고. 저는 불법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며 항상 조심했지만 북한에선 (시비)걸면 다 불법이 되는거에요. 신고를 안한 것, 그 돈에서 얼마를 당국에 바쳐야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 당시 제가 당원이었는데 당생활 안한 것까지 죄목으로.  

A4용지 50장을 받으면 (거래 상대인 중국인들의) 차번호부터 적어야해요. 그게 사람이 죽을 짓이에요. 한번 쓰고 끝내면 되는데 다시 종이를 줘서 처음에 쓴것과 똑같이 써서 내야해요. 이때 하나라도 다르면 거짓말이라고 하는거에요. 조사도 이렇게 마주앉아 하면 좋아요, 그런데 그러지않고 일단 잡아 넣어놓고 겁을 엄청 줘요. 나중에는 안한 짓도 했다고 할 만큼이요. 만들어서 자기네 사업 성과로 올리려는 거죠.

협박도 했어요, ‘우리가 다 알아내면 네 애를 없애버리고 너는 교도소 10년형 보낼거다. 애는 낳아도 어차피 너는 교도소 갈건데, 애한테 그런 얼굴 보여줄거냐’라며 ‘아이도 나라에서 없애겠다’고요. 그러니 저는 안한 일도 했다고 하고 싶을 정도죠.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오면 다시 불안한거에요. 당시 임신 중에 뭐가 먹고싶어 음식을 하고 있다가도 가슴이 막 뛰고 그랬어요, (전에) 음식을 해두고 숟가락 한번 떼지 못하고 잡혀 가기도 했거든요. 

5. 출산은 병원에서 하셨나요? 

저는 당시 무역을 해서 돈이 있는 편이었어요. 동네 고등학교 친구들 가운데에는 집에서 애를 낳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 출혈하고 중간에 앓고 하는 위험한 상황을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병원에서 낳기로 했죠. 병원에 돈을 얼마간 주고 제왕절개를 해 낳았어요.

_ 병원에서 출산하던 당시 어려운 점이라든가 혹은 참 열악하다 싶었던 점은 뭐 있을까요?

애 낳을 때 정말 당황했던게, 북한은 의료, 교육에 있어 무료제도라고 하는데 애를 출산하려고 가니 마취비용부터 주사기, 수술장갑, 소독솜, 핀셋(pincette), 식사, 약, 링겔 다 사오라는거에요. 의사, 간호사들이 먹을 식사까지. 저는 의약품들은 뭐가 뭔지 모르니까 종이에 빼곡히 적어 약국에 갔죠. 병원에서는 의료기술만 제공할 뿐, 나머지는 다 개인이 부담하는거에요. 또 출산하고 나면 춥잖아요. 난로에 뗄 수 있는 석탄, 나무까지 해 와야해요. 내가 애를 왜 낳는건가 싶고, 이런건 다 나라에서 해줘야 하는 것들이잖아요. 그게 참 어려웠어요.

6. 당시 임신했을 때 병원에서 아이가 정상이 아니니까 낙태를 해야한다 이런 이야기도 들으셨다고요?

네, 임신 중에도 제가 검찰소에 자주 불려가곤 했는데, 검찰소에서 제게 겁을 많이 주고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검찰소 사람들이 병원에 같이 가기도했어요. 초음파를 하는데, 북한 초음파는 밝지도 않아요. 전문가나 알아보지, 제가 봤을 때에는 어느게 아기인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아기가 장애가 있다는거에요. 심장소리도 정확하지 않고, 양수도 많지 않고, 아기 움직임도 없고, 그래서 낳는다 해도 피부병이 있을거고 건강한 아이를 못낳을 거라면서요. 그래서 낙태를 해야하니 다음날 낙태 준비를 해오라고요. 

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발로 차기도 했다며 문제없다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초음파 화면을 보라고요. 그런데 볼 수가 없죠, 화면이 까매서. 그러고 집에 와서 엄청 울었어요. 내일이면 낙태해야하는구나 싶어서. 북에도 (수술동의) 사인이 있어요. 저는 낙태할 생각이 없었어요. 먼저 병원 의술도 믿을 수가 없었고, 겁이 났어요. (낙태가) 아이 출산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텐데. 그리고 북한 일반 여성들은 잘 모르지만, 저는 당시 중국 잡지나 뉴스를 보고 책도 읽어주고 하며 (태교라는걸 했거든요.) 그때 제가 남편도 없이 혼자 살았으니 외롭잖아요. 

아기한테 의지를 많이 한 뒤라, 나는 (낙태) 못하겠다 했죠. 검찰소한테도 아기는 낳고 법처벌 받아도 받겠다 했어요. 그러니까 검찰소에서는 아이를 낳고 어차피 감옥가야하는데 그냥 낙태하라는거에요. (또 병원에서 이야기했듯) 아이가 정말 안좋으면 (어떡하겠냐고.) 원래 북한에선 아이가 장애인이면 바로 엎어두고 죽이거든요. 그게 나라의 규정이에요. 나는 (낙태) 못하겠다고, 아이 낳아서 내눈으로 확인하고 키우든가 하겠다 했어요. 그때 그게 너무 슬펐어요.

_ 결국 본인이 완강하게 거부해서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군요. 아이를 낳아보니 어땠나요?

정말 엄마의 힘이었던 거 같아요. 마취가 아직 풀리지도 않은 때에 눈을 뜨고 내 아이 어떤가냐고, 어눌한 발음으로 선생님한테 제일 먼저 물어봤대요. 애를 보니 너무 건강하고. 지금 우리애가 공부도 잘하고 예술쪽으로도 밝아요. 당시 아이가 태어났는데 피부도 정말 좋았어요. 이렇게 예쁜 아이라니... 제가 손발부터 봤어요, 열개 다 있는 정상아이더라고요.

_ 그렇게 정상아이였는데 병원에서는 왜 장애아라면 낙태를 강요했던걸까요?

당시 구류장에서도 강제낙태를 (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했어요. 본인이 죽어도 싫다해도 강제로 척추에 주사를 놓아 낙태시키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가지고 어떻게든 자기네 사업성과로 만들어야하는데, 임신이 돼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던거죠. 그래서 병원하고 짜고 그렇게 한게 아닌지. (병원에서 장애아라고 알려주고는) 바로 다음날 낙태를 하라고 한 것이며 왜 검찰소에서 낙태를 하라고 한번 더 언급했는지… 지금 이야기하면서도 치떨리고 몸에 닭살이 일 정도에요. 

7. 본인은 강제낙태를 강하게 거부할 수 있었지만, 구류장에서 다른 분들이 강제낙태 당하는걸 보셨다고요? 

임신 8개월 정도 됐던 언니였어요. 구류장에서 임산부기간을 거의 보냈더라고요. 오래 잡혀있었어요. 임산부가 왜 그렇게 오래 있었냐면, (임산부는) 재판을 받을 수도 없고 교도소에 보낼수도 없으니 나선시 안에서 쉬쉬하며 구류장에 붙잡아 둔거죠. (그 언니가 구류장에서 나가려고) 다른 연줄을 대 재판을 받고선 이제는 나가겠다 했는데 자기네 안에서 규정을 새로 만들더니 그 언니를 강제로 데리고나가 낙태를 시키고 구류장에 다시 들여보내는 거에요, 몸조리할 시간도 없이요. 그 언니 말이 어떤 주사인지도 모르는 주사를 척추에 놓은것만 기억이 난다고. 그런데 나중에 보니 손톱과 손가락 사이가 다 벌어져있는 거에요, 벽을 긁어서. 

병원에 있다가 출혈이라도 멈추면 들어오겠지 했는데, 애를 없애자 마자 우리 구류장에 넣은거에요.그런데도 그언니를 누워있게도 안하고 우리와 똑같이 앉아서 머리를 숙이고 처벌받고 있게 하고. 출혈이 계속 있는데 남자 간수를 보는 앞에서 (옷을) 갈게 하고, 우리끼리 그걸 안보이게 가려주면 그것도 못하게 하고. 저희가 도와줄 수 있는거라고는 물을 틀면 더운물이 처음 5분 정도만 나오는데, 그 사람에게 먼저 씻으라고 양보 하는거 밖에 없더라고요. 몸이 보전 될쯤 되니 결국 교도소로 갔어요. 

지금까지 조유리씨와 함께 북한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건강권 위협 실태에 관해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오늘 증언 감사합니다. 

 - 2부 -

조유리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에 관한 전문가의 인권법적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정현 교수 전화연결돼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늘 증언에서 어떤 인권법적 문제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요?

우선 오늘 사례에서도 들으셨듯이 임산부는 북한 국내법으로도 구류 등 형사절차에서 일정한 제한 및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실제 관행은 특별한 구별 없이 오히려 더 혹독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도 당사국인 여성차별철폐협약 제12조에서는 보건 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물론, 더 적극적으로 “여성에 대해 임신 및 수유기 동안의 적절한 영양섭취를 확보하고 임신, 해산 및 산후조리기간과 관련하여 적절한 역무제공을 확보하여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무상으로 이를 제공하여야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무상의료제도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사례에서 들으셨듯이 임산부에 대해서도 특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아이가 장애인일 경우 태어난 이후에도 죽이고, 강제낙태의 경우도 검찰소 등 정부기관에 의해 적절한 사후 조치 없이 빈번히 자행되고 있는 것은 태아 및 영아의 생명을 경시하는 문제와 함께 산모의 건강권 차원에서도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오늘 사례는 임산부의 자유권 및 사회권이 종합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그런 심각한 사안으로 파악됩니다.

북한 여성들이 겪는 열악한 임신, 출산 실태에 관한 인권법적 측면에 관해 전문가 의견 들어봤습니다. 조정현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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