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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31 -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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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7-10-23 18:15


<시즌2>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눈물의 기록, 정의의 기록'
증언 31 - 표현의 자유

작가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는 대단히 중요하고 최대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인데요. 오늘 북한에서 작가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적어둔 짧은 글 때문에 보위부에서 3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도명학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듣도록 하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언제쯤 탈북 하셔서 한국에 오신 건가요?

2006년에 탈북해서 그 해 들어왔어요. 한 11년 됐죠. 

_북한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북한에서는 작가로, 시인으로 활동했어요. 기본적으로는 항상 글을 썼죠. 글은 15살 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정식 작가동맹에 소속된 것은 1996년 시작해서 2004년까지 활동했습니다.

_‘조선작가동맹’ 이렇게 되는 거군요. 그럼 작가동맹의 소속 작가는 얼마나 되나요?

북한에 제일 많았을 때가 3천6백명 정도가 됐어요. 그 이후에 작가가 줄었어요.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요. 후배가 양성이 안됐죠. 2004년 경 그때는 한 1천명? 통 틀어 1천명 정도 밖에 안됐어요. 아마 지금은 더 줄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조선문학은 끝이다, 끝났다.' 이렇게 또 암암리에 얘기를 했죠.

_작가동맹에서 활동 하면서 주로 어떤 글을 쓰셨나요?

체제를 찬양하고 청년들과 군인들, 주민들이 체제에 충성을 하도록 자극을 하는 그런 내용의 글을 썼죠. 김씨 가문 우상화도 쓰고요. 대게 그런 거예요. 순수한 인간 생활을 형상화하는 작품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글은 써도 잘 평가를 못 받죠.

_최고지도자나 김부자 찬양하는 내용이군요.

네, 그런 글을 써야 평가를 높이 받죠.

2. 그런데 선생님은 거기에 써둔 원고가 발각돼서 보위부 감옥에 갔다는 건데요. 어떤 내용의 글이기에 문제가 된건지 궁금합니다.

시가 두 편이었어요. 하나는 북한 주민들의 아주 어려운 삶 그리고 자유가 박탈되고 반항도 할 줄 모르는 모습을 철도역에 장사짐을 든 승객들에 비유했죠. 그들의 짐이 생존의 짐보다 그 위에서 내리누르는 권력의 체제의 짐 때문에 더 무거운 느낌이었어요. 그렇다고 해도 반항도 할 수 없고 영원히 구부러진 상태로 살 수밖에 없는 그들로 온 북한 땅이 가득 찼다. 제목 자체를 ‘곱사등이들의 나라’라고 지었죠. 

_일단 한편은 '곱사등이', 기차역에서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에 짐을 진 모습을 통해서 북한 체제의 무거운 짐 때문에 곱사처럼 살고 있는 인민들을 형상한 시였군요.

(다른) 하나는 풍자시인데, 경제사정이 어려워 (제대로 먹질 못해) 북한군이 병력 수를 충당할 수가 없으니까 신체검사 기준에 맞는 청년들을 군이 데려갈 수가 없는 거예요. 키가 작거나 아니면 몸무게가 모자르거나 아니면 병이 있기 때문이죠. 병력수를 충당하려면 신체검사 기준을 당연히 낮출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까 나중에는 낮추다, 낮추다 눈 한쪽이 없는 외눈박이도 군대를 보낸다는 지시가 있었어요. 

_원래 기준으론 안 되는 거였나요?

원래 북한은 안경만 써도 군대를 못가거든요. 두 눈 다 있어도 말이죠. 근데 안경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쪽 눈 없는 사람도 입대한다는 거죠. 그게 무슨 소린가 하고 신기하게 생각을 했어요. 들어보니까 참 웃긴 게, 눈 두 개 중에서 왼쪽 눈 없고 오른쪽 눈만 있으면 총을 쏘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주장이에요. 그래서 외눈박이도 입대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거예요. 풍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그걸 풍자하는 시 하나 썼죠. 물론 두 시를 발표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지만, 그걸 가지고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할까요? 그저 나 혼자 들여다보면서, 끄적거리면서 위안을 삼는 거죠.

_그 두 번 째 시의 제목은 뭐였나요?

두 번째 시는 말 그대로 ‘외눈도 합격’이었어요.

3. ‘곱사등이들의 나라’, ‘ 외눈도 합격’ 이 두 편의 시가 발각이 돼서 감옥살이를 했는데 궁금한 점은 자신만 보려고 쓴 시들을 어떻게 남에게 발각된 건가요?

제 친구한테 보여줬어요. 아주 가까운, 너무 가까워서 김정일도 막 비판하는 얘기를 주고 받는 친구였어요. 시를 나 혼자만 보고 위로 받는 것도 좋지만, 같이 읽어보는 사람 하나 더 있으면 더 위로 받을 거라고 생각해서 보여줬는데 훗날에 알고 보니까 그 친구가 보위부의 밀정이었어요. 그 친구가 밀정일 줄은 몰랐죠. 그 친구가 사진작가였는데 사진기를 늘 차고 다니니까 제 시의 사진을 찍어버린 거예요. 사진은 증거자료잖아요. 그걸 보위부에 제출하고 (우리가) 나눈 이야기도 다 전해진 거죠.

_그러면 어느 날 보위부에서 출석 요구를 하던가요? 아니면 집으로 들이닥치던가요?

집에 들이 닥친 게 아니고 아마 다 계획을 짠 거 같아요. 그 전날 그 친구하고 만나서 술 마시고 헤어졌어요. (다음날 어디를 가기로 했는데) 어디를 갔다가 그 날 돌아오는 걸로 아니면 하루 자고 오는 걸로요. 아침에 어디서 만나자 이렇게 약속을 한 상태인데 제가 새벽에 좀 일찍 일어나거든요. 일어나서 산책을 하거나 식구들은 아직 자고 제가 제일 먼저 깨니까요. 그런데 승용차가 와서 무조건 쳐 넣고 갔어요. 그때는 왜 그런지도 몰랐죠. 혜산에서 평양까지 압송을 했어요. 저는 그렇게 중범죄로 잡힌 건줄도 모르고 양강도 보위부에 갔다가 내가 금방 풀리겠지 싶었죠. 내가 생각해봐야 (구체적으로) 뭣때문에 잡혀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보나 내 행적을 스스로가 잘 알잖아요. 어쨌든 나한테는 반체제 성향이 농후했으니까 그런 문제겠거니 정도는 생각했죠.

4. 그럼 조사는 얼마나 받으신 건가요?

국가 보위부 조사가 한 3, 4개월 갔어요. 초보적으로 된 다음에 내가 양강도 사람이니까 양강도 보위부에다가 위임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를 바탕으로 캐내는 거죠. 그런데 그게 더 오래 걸려요. 1차 조사를 3, 4개월 받았고 예심을 2년 정도 받았어요. 원래 6개월 하게 돼 있는데, 연장을 하고 연장을 하고 그렇게 세 번인가 연장을 했어요.

5. 그 때 결과적으로 조사 끝에 어떤 죄가 확정된 건가요?

(최근에) 형법이 달라졌다고 하니까. 그 때는 59조, 61조, 62조의 형법에 걸렸다고 했어요. 59조는 반동 단체 조직죄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61조가 반동선전죄였어요. 시와 내가 발언을 했던 것이 반동 선전죄죠. 62조가 조국반역죄예요. 외국에 국가기밀이 되는 것을 팔아 넘겨줬다거나 미국을 비롯한 교전 상대국에 도주했을 때 받는 죄목이죠. 

(*북한 형법(2012년 개정)에서는 60조(국가전복음모죄), 62조(반국가 선전, 선동죄), 63조(조국반역죄)에서 규정)

_그런데 선생님은 왜 그 죄(62조 조국반역죄)를 적용받은 거죠?

그게 도주는 안했지만, 제가 밀정하고 친하다 보니 그 친구와 아무 말이나 다했고 그러면서 “이 체제는 가라앉는 배와 같다. 이남으로 가자.”라고도 했거든요. 

_그런 말을 농담반 진담반했던거군요?

아니에요. 진짜로 했어요. 그래서 계획까지 짰던 거죠. 그러니까 조국 반역죄가 추가됐던 거예요. 세 가지를 조사 받는데 결과적으로는 59조 반동단체 조직죄는 길어서 훗날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것 같고, 조국 반역죄도 조금 약했죠. 실행에 들어가기 전이기 때문에요. 가장 벗어나기 힘든 게 반동선전죄였어요. 물질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죠. 

_형을 어떻게 받았나요?

형을 안 받았죠. 미제로 끝났어요. 결과적으로 죄는 밀정이 다 조직하고 유도하고 부풀리고 꾸미고 (내가) 죄를 지게끔 만들고 모든 것은 밀정이 자신의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 의도된 기획 작품이었다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_조사는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결국은 선생님의 죄는 가벼워지고 원래 신고를 했던, 그 밀정 역할을 한 친구한테 (보위부가) 죄를 뒤집어 씌운 셈이군요.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건가요?

사건이 너무 길게 가니까요. 사건을 빨리 종결해야 보위부원들도 편한데 너무 길게 가서 그런 거죠.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시를 썼다는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 이유로 3년이란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군요.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받았는데 혹시 북한 헌법 제68조를 보면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더라고요. 북한에 있을 때 그 조항을 알고 계셨나요?

북한에 있을 때 헌법도 배우는데, 법치국가가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기억을 안 하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체제를 해부해 보려고 (일반 사람들보다) 조금 더 파본게 있죠. 북한 헌법에도 다른 민주국가에 있는 기본적인 조항들은 다 있어요. 언론의 자유, 출판, 결사, 종교의 자유는 다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그냥 종잇장 위에 있을 뿐이니까. 위선일 뿐이죠.

7. 이제 한국에 와서 ‘북한망명펜센터’에서 작가활동을 하시는데 지금은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쓰고 있는 중이죠? 

남쪽에 와서는 민주주의니까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죠. 대통령도 욕하고 잘못하면 대통령도 감옥에 가는 데요. 북한과 비교 자체가 안 되는 거죠. 북한을 비교 하려면 대한민국과 비교를 하면 안 되고 공산주의인 중국과 비교할 수 있죠. 그런데 중국 정도만 해도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중국이나 다른 공산주의 국가 만큼의 자유만 있어도 숨 쉬겠다' 그런 정도였죠.
 
_여기 와서 북한에서 작가생활 했을 때의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글로 펼치지 못한, 그 때를 회상하신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제 10년 됐으니까... '거기서 과연 그렇게까지 자유가 없었던가?' 이런 생각이 가끔 들어요. 내가 지금 여기 와서 오래 살다 보니까 북한에 대한 기억을 좀 잃어버렸는지. 정말로 그렇게까지 못살 세상이었던가 믿기지가 않아요. 거기 살다온 사람이어도 (이곳에서 산지) 오래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데 기존의 남한이란 민주국가에서 오래 산 사람은 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기지 않을 거고, 그게 이해됩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조선작가동맹 양강도 위원회 소속작가로 활동하면서 시를 잘 못 썼다는 이유로 3년간 감옥에서 고생을 하셨던 도명학 선생님 모시고 말씀 나눴습니다. 오늘 증언 감사합니다.

- 2부 -

북한에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적어둔 짧은 글 때문에 보위부에서 3년간 수감해야 했던 도명학씨의 증언 들어봤습니다. 이에 관한 전문가의 인권법적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정현 교수 전화연결돼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도명학씨의 오늘 증언을 통해, 어떤 인권법적 문제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 관련되는 인권인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간섭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또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요, 민주주의에서 불가결한 요소이고 한 인간의 완전한 발전에 있어서도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모든 권리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사회주의헌법 제67조에서 이를 보장하고 있고, 북한이 당사국인 자유권규약 제19조에도 이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유권규약 제19조 3항에 따르면 타인의 권리 존중을 위해서, 또 국가안보나 공공질서를 위해 사전에 법률로 규정된 범위에 한해 표현의 자유는 일부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본질적인 내용이 침해되어서는 안될 것이고 그 제한이 과도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도명학씨의 경우, 정식 출판되지도 않은 작은 메모의 내용을 가지고 정식 사법절차도 없이 3년이나 되는 긴 기간동안 보위부에 끌려가 수감되었다는 사실은, 우선 관련되는 근거 법률 없이 자의적으로 실시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구요, 설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내 법률에 근거해 그러한 처벌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권리제한의 범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으로 국제기준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대로 북한 내에서 표현의 자유, 특히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고요. 이번 도명학씨 사례가 그 구체적인 예를 제시해 준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북한에서 침해받고 있는 신념 및 표현의 자유에 관한 전문가 의견 들어봤습니다. 조정현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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