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보내는 편지

등록일 2020.01.09

보고 싶은 명희에게

명희야, 잘 있니? 또다시 새해가 밝았구나, 우리가 헤어진지도 어느 덧 15년, 해는 열다섯 번이나 바뀌었는데 우린 그동안 한 번도 못 만났구나. 마지막으로 너에게 부탁하는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나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에게 말도 못하고 기약할 수 없는 길을 떠나는 날 바라보면서 너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참을 가다가 뒤돌아봤을 때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엔 걱정과 안타까움이 가득했었지, 그런 너를 뒤로 하고 걸으며 나도 울었어. 가다가 죽을 수도 있고 다시는 너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음이 북받쳤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리라’ 몇 번이나 곱씹으며 입술을 깨물었지,

다행히 난 죽지 않고 살아서 두만강을 건넜고 몇 년동안 중국을 전전하다 지금은 한국에 와서 살고 있어. 일 년 만 있다가 돌아온다는 약속은 커녕 그렇게 증오하던 남조선에 와서 산지 10년이나 지났구나,

훗날 어머니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들었다. 내가 떠난 다음 날 네가 집에 왔었다고 하시더구나. 내가 남긴 돈 몇 푼도 다 받았다고 하셨어. 고마워! 너도 노부모님 모시고 힘들었겠는데, 그 돈 한 푼도 쓰지 않고 전달했다니 정말 고맙다.

사실 그 때 돈을 네게 맡기면서 반신반의 했었어. 잘 전달되면 좋겠지만 네가 몽땅 써버린다 해도 난 괜찮았거든. 그 돈을 쓸 만큼 힘들었고, 그 돈이 너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난 만족해. 우린 딱 친구잖아.

함께 직장을 다니고, 산에 나무하러도 가고, 또 30리 길이나 넘는 길을 오가며 국수장사도 같이 하면서 우리가 쌓은 정이 얼만데... 힘든 일, 좋은 일 있으면 서로 나누고, 마음 속 고민거리는 스스럼없이 터놓기도 했지. 그 만큼 넌 나처럼 믿고 의지했던 진정한 친구였어.

가끔 좋은 음식 먹을 땐 니 생각이 나. 특히 네가 좋아하는 닭요리를 먹을 때 더욱 그래. 너랑 같이 강낭떡을 부쳐 먹으면서 우리 죽기 전에 잘 살 날이 올까? 하던 일이 엊그제 같다.

명희야, 내가 어떻게 한국에 왔는지 궁금하지? 그건 바로 한국티비 덕분이었어, 중국티비로 한국 뉴스를 보는데 신세계가 따로 없었어. 하찮은 김치 하나로 사람들의 건강에 대해 심도있게 다루는 걸 보고 “아, 한국이야 말로 진짜 사람사는 세상이다!” 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세뇌 받았던 ‘썩어빠진 남조선’이 순간에 사라지고 천국이 펼쳐지더라고. 그래서 또 한 번의 죽을 고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택했어,

그때 나의 선택이 얼마나 옳았는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어.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거 하나만 꼽으라면 일한 만큼의 대가가 주어진다는 거야. 우리 직장 다닐 때 아무리 뼈빠지게 하루 18시간 넘게 일해도 월급은 하루 밥 벌이도 안 됐었잖아.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칠 정도로 힘들었던 나날이었어.

20대 좋은 시절의 힘들고 지치고 고된 일들, 이젠 추억이 됐네. 우리 서로 만나면 그날의 이야기 옛말 젯말 밤새도록 하자꾸나. 같이 커피숍에도 가서 미국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식당에 가서 니가 좋아하는 닭요리도 실컷 먹고, 생각만해도 기분 좋아지네.

친구야, 정말 보고 싶다.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나이 40대 중반, 벌써 중년이라니 믿기지가 않고, 서로 만나게 되면 얼마나 모습이 변해 있을까? 그냥 올해 통일이 되어 몇 달 후면 널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통일이란 게 어느 날 갑자기 올 수도 있는 거잖아?!

명희야, 아무튼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잘 지내고, 요즘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건강하길 바란다. 새해엔 우리 서로 만나는 희망찬 날이 오길 바라면서. 글을 마치련다.

친구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서울에서 친구 수련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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