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특집-김일성은 조선을 해방하지 않았다

등록일 2019.08.15

MC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가영입니다. 북한 당국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일제로부터 한반도를 해방시켰다고 선전해오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해방의 은인이자 인민의 어버이로 우상화됐고, 북한 주민들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충성을 바치길 강요받고 있는데요. 하지만 북한 당국이 주장해 온 김일성의 혁명역사에는 사실과 다른 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8·15 광복 74주년을 맞아 ‘김일성은 조선을 해방하지 않았다’는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자리에 국민통일방송/데일리NK 이광백 대표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1.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조선 반도가 일제 치하로부터 어떻게 벗어나게 됐는지 배우게 되는데요.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면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조선이 해방됐는데, 북한에서는 전적으로 김일성에 의해 조선이 해방됐다고 교육을 한다고요?

2. 그럼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김일성 항일 혁명의 진실을 차근차근 파헤쳐보도록 하죠.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1930년에 조선혁명군을 스스로 조직하고 지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조선혁명군의 존재 자체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요?

3. 기록에 의하면 김일성이 1931년에 중국공산당에 입당을 해서 1932년 이후에야 중국공산당에서 조직한 수많은 빨치산부대 중 하나에 가입했다고 알려집니다.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 시기부터라는데, 이 당시 행적은 어땠습니까?

4. 이 당시 소위 ‘김일성 부대’의 작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보천보 전투로 알려지는데요. 이 전투를 계기로 김일성의 이름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 전투의 실체는 어떤 겁니까?

5. 그런데 1930년대 말이 되면서 만주 빨치산들의 상황이 크게 악화됐는데요. 당시 일본이 빨치산 운동을 근절시키기로 결정하고, 1939년부터 1940년까지 만주에 엄청난 병력을 투입한 겁니다. 당시 빨치산 부대들의 손실도 꽤 컸을 거라고 유추해볼 수 있는데, 그래서 김일성도 소련으로까지 피신을 하게 되죠?

6. 사실 김일성뿐만 아니라 1940년대 초 소련 영토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만주 빨치산들이 넘어와 있었다고 알려지는데, 소련에서 김일성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7. 십여년 간 빨치산 생활을 하며 굶주림과 방랑생활을 겪어야 했던 김일성으로서는 바로 이 시기에 처음으로 안락한 생활을 꾸릴 수 있었던 건데요. 특히 아들 김정일을 낳은 시기가 바로 이 때죠?

8. 한편 1942년 봄과 여름 사이 소련군 사령부는 소련으로 넘어온 만주 빨치산 대원들로 특수부대인 88독립저격여단을 결성하게 됩니다. 여기에 김일성도 배치가 됐는데, 이 여단에서 어떤 일을 맡았습니까?

9. 그러니까 김일성은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소련 극동군 산하 ‘88저격여단’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일본에 대항해서 그 어떤 종류의 군사적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는 거군요.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조국 해방 명령을 내리라고 지시했다는 북한의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사실인데요?

10. 1945년 9월 말에 김일성이 블라디보스토크와 원산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8월15일에 김일성은 조선 땅을 밟지도 못했는데요, 왜 북한 당국은 역사까지 왜곡하며 김일성이 조선을 해방했다는 주장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MC :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의 해방은 소련과 미국의 참전으로 이뤄졌습니다. 비록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했지만,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국내외에서 목숨 걸고 독립투쟁을 벌인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제라도 역사 왜곡을 멈추고, 8.15 광복의 의미를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할 것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오늘은 8.15 광복 74주년을 맞아 ‘김일성 해방 투쟁사의 진실’을 살펴봤습니다.
댓글 (총 0 개)
 
덧글 입력박스
덧글모듈
0 / 1200 by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