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과 박정희를 다시 생각한다

등록일 2011.08.07


안녕하세요.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의 장성무입니다. 오늘은 제50과 ‘박정희를 다시 생각한다’를 살펴보겠습니다. 남조선에서 4대부터 9대까지 총 6번의 대통령을 력임한 박정희,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였을까요? 잠시 그의 리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정희 : 1917년 경북 선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문경에서 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복무하였다. 군인이 되고픈 평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40년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했으며,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44년 만주국 관동군 장교로 부임하여 열하성 북부 지역에서 중국군과 대치 중에 해방을 맞았다. 귀국한 뒤 남조선 군 창설에 참가하여 1946년 남조선 륙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되였다. 해방 뒤 혼란한 시기에 남로당의 군 조직에 가입하였다가, 1949년에 체포되여 위기를 맞았으나, 군 수뇌부의 도움으로 출옥하였다. 조선전쟁 중에 현역으로 복귀한 뒤 사단장, 관구사령관, 군 부사령관 등을 력임하였다.’

박정희가 남조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군사정변을 주도하여 집권에 성공하면서부터입니다. 그는 1962년 민간정부로 이양된 후 1963년 제5대, 1967년 제6대 대통령에 당선되였습니다. 이 기간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윁남 파병을 결행했으며, 경제에서는 수출주도형공업화정책을 추진합니다.

1969년 대통령 3선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을 강행한 뒤, 1971년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1972년 10월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유신헌법을 제정하였으며, 이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8대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이후 자주국방을 위한 중화학공업화와 새마을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였고 1978년에는 또다시 제9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이후 그의 장기집권에 대한 남조선 인민들의 저항이 거세져 정치적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1979년 10월 만찬 도중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됩니다.

8.15해방과 6.25전쟁 이 두 차례의 큰 전쟁 과정에서 군인으로 교육받으며 뜻을 세우던 그의 정신세계는 타협과 조정이라고 하는 현재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 민족의 사대주의, 자주정신의 부족, 게으름, 명예심의 부족을 증오했으며, 그 결과로 빚어진 인민들의 가난과 어려움에 근원적으로 분노하였습니다.

때문에 박정희는 민족의 새로운 력사를 개척하는데 소수의 지식인들의 지도적 역할을 매우 중시하였습니다. 그는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개인의 리기심에 기초한 서양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에 기초한 민주주의로 민족의 새로운 력사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같은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통치방식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진한 개발정책과 외교정책이 성과를 거두면서 더욱 비타협적인 권위주의로 바뀌어 갑니다.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남조선 사회에 력사적으로 축적되여 온 성장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그의 집권한 시기에 남조선의 경제는 고도성장을 달성하며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습니다. 또한 박정희는 자기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매우 엄격했으며 자신 또한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군사정변이라는 불법적인 방식으로 집권을 시작하여 유신체제를 통해 어떠한 국가기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자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민들의 인권은 탄압되었고 이로하여 정치 또한 후퇴하였습니다. 인민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대통령의 절대 권력은 인민들에게 적법성을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남조선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점은 박정희를 끊임없이 따라다녔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 제50과 ‘박정희를 다시 생각한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제51과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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