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지적한,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 2

등록일 2017.02.03


<45>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지적한,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 2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유엔이 지적한 북한당국의 인권침해 실태 가운데서, 북한당국이 ‘관리소’라고 부르는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말씀 계속 나누고자 합니다. 유엔은 여러분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 지난 2013년,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조직해서 북한의 인권상황을 낱낱이 조사한 바 있습니다.

 유엔은 그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북한당국자들은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만, 전직 경비병. 수감자 그리고 수용소 인근 거주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또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북한의 정치범수요소가 계속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당국이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은 그것이 감추고 싶을 만큼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곳에서 고초를 겪은 사람이 나중에 북한을 탈출해서 대한민국에 와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닌데, 그 존재를 감출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유엔이 확인한대로 수십 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곳인데,

 여러 자료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1970년, 현재의 인민보안부인 사회안전성에서 ‘정치보위부’ 즉 현재의 국가안전보위부를 독립시키면서 정치범을 주로 다루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2년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쑤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 씨를 없야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관리소라고 하는 정치범수용소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보위부가 생기기 이전에는 사회안전부에서 정치범도 함께 다루다가 1970년 이후에는 보위부에서 정치범을 전담하게 되고 정치범수용소룰 운영하는  것이겠지요.

 역사를 보면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북한에서는 소련식 공산주의 혁명을 내세워 그에 반대하거나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주민을 이른바 ‘반동분자’로 몰아 잡아 가두었고. 그래서 1947년 10월에 이미 17개의 ‘특별노무자수용소’라는 이름의 감옥이 있었는데 그것이 몇 단계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정치범수용소’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치범수용소의 존재가 바깥 세상에 크게 알려진 것은 1967년 북한 외무성에서 번역일을 하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서 6년여 동안 수감 당한 베네주엘라 출신 열성 공산당원이며 문인인 ‘알리 라메다’(Ali Lameda)와 프랑스 출신 좌파인사 자크 세디오(Jaques Sedillot)의 수감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일 것입니다.

그후 베네주엘라 정부와 루마니아 대통령, 그리고 ‘암네스티 인터내셔녈’ 즉 국제사면위원회의 개입으로 그들은 1974년 5월 석방되었으나 세디오는 고문 여독으로 북한에서 사망하고 베네주엘라 출신 알리 라메다는 유럽으로 돌아가 북한에서 체험한 수기를 써서 세상에 밝힘으로써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태가 전세계에 폭로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말씀 잇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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