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부 사라진 김복식

등록일 2011.08.07


샘, 오늘 아침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둘이 병원에 들이닥쳤네. 병원 내부를 한참 뒤지더니 다짜고짜 김복식의 행방을 묻더군.

남자들 : 야, 저쪽 방 뒤져 보라.

한 스 :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오!

남2 : 듣자하니, 선생이 김복식과 친했다고 하던데......

한 스 : 그야 내 담당안내원이니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친했지요.

남2 :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요?

한 스 :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김복식 선생한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남1 : 반동놈의 새끼한테 선생은 무슨? 묻는 말이나 대답하시오.

한 스 : 며칠 전에 함북도 쪽에 알아볼게 있다며 출장을 나갔소. 오늘 돌아온다고 했으니, 조금 있으면 올 겁니다.

남2 : 정말 김복식을 마지막으로 본 게 그때요?

한 스 : 그렇습니다.

남1 : 똑바로 말하라. 외국인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

남2 : 리 과장, 그만하라. 한스 선생, 우린 보위부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사실은 김복식이 나라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선생께서 최대한 방조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들은 김복식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꼬치꼬치 캐묻더군. 몇 시간 동안 같은 내용을 물어보는 통에 진이 다 빠지고 말았네. 나에게서 얻을 게 없다고 판단했던지 이번엔 병원 직원들까지 심문을 하더군. 그 중 몇 명은 차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 갔다네. 보위원들이 몰아치는 기세로 봐서는 김복식에게 큰 일이 생긴 모양이야.

한 스 : 김간호원, 김복식 선생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정말 걱정 입니다.

김간호원 : 조국을 배반한 배신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 스 : 김 선생이 도대체 뭘 배신했단 말입니까?

김간호원 : 선생님도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더 이상 관심 갖지 마십시오.

멀어져가는 김간호원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 속이 하얘지고 가슴이 탁 막히더군. 그동안 봐왔던 부끄럼 많고 착한 사람이라곤 믿을 수가 없었네. 도대체 김복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친하게 지냈던 병원 직원들이 저토록 싸늘해질 만큼 큰 죄를 지은 것일까? 순간 김복식이 떠나기 전에 했던 얘기가 머리를 스쳤네.

김복식 : 한스 선생, 이번 출장은 좀 오래 걸릴 겁니다.

한 스 : 어디로 가시게요?

김복식 : 함북도로 갑니다.

한 스 : 거리가 멀어서 오래 걸리겠군요?

김복식 : 그렇습니다.

한 스 : 김선생, 함북도의 의료사정이 렬악하다고 들었는데, 출장가는 길에 자세히 살펴보고 돌아와서 좀 알려주십시오.

김복식 : 알겠습니다. 뭐 또 다른 부탁하실 것 없습니까?

한 스 : 너무 오래 있다가 오지는 마십시오. 이젠 김선생이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으니까요. 어쨌든 조심히 잘 다녀오십시오.

김복식 :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스 선생, 우리 악수 한번 합시다.

한 스 : (웃으면서) 이거 진짜 오래 있다가 오시려나 봅니다. 그래 악수 한번 합시다. 잘 다녀오세요.

김복식 : 네. 그동안 잘 지내십시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김복식은 작별 인사를 한 것이 분명하네. 결국 김복식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결단을 한 것 같네.

한창 수색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아직까지 무사한 것 같은데, 불안하기 짝이 없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온통 김복식에 대한 생각뿐이라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저 간절히 기도를 하는 것 외에는 김복식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었네.

병원에 앉아서 한참을 기도하다가, 어둑어둑해질 때쯤에 일어섰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오는데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이 밀려오더군. 그제 서야 김복식을 잃었다는 게 실감이 났네.

김복식 : 다 잊고 살았었는데, 한스 선생 사는 걸 보니, 부럽기도 하고,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무튼, 선생 덕에 내 머리가 아주 복잡해졌어요.

김복식 : 사람으로 태여났으면 선생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선생은 나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한스 선생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이 참 으로 궁금하군요.

김복식, 내 유일한 북조선 친구, 제발 무사하기를. 그래서 언젠가 꼭 다시 만나기를...

2000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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