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대학생들과의 만남

등록일 2011.08.07


샘, 내가 오늘 어디를 다녀온 줄 아나? 바로 북조선 최고의 엘리뜨들이 다닌다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을 만나고 왔네. 외문학부 학생들이였는데 알고 보니 김복식도 이 학부를 다녔다고 하더군. 김복식 말로는 학생들에게 외국인을 만나게 해주는 건 정말 예외적인 일이라고 하네만 이번에도 공화국 친선 메달이 톡톡히 역할을 한 듯 하네.

한스 :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나게 돼서 대단히 반갑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세계 곳곳을 다녀봤습니다. 이 학부 학생들은 졸업을 하면 외국으로 나간다고 들었는데, 제 경험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학생 1 : 한스 선생님, 세계 다른 나라를 많이 가보셨다고 했는데, 조선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한 스 : 사실, 난 조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왔습니다. 외부세계에는 조선의 실정이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평양에 처음 왔을 때에는 너무나 정리가 잘 되여 있어서 놀랐습니다. 내가 이제껏 구호활동을 해온 어떠한 도시보다 잘 정비되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더군요.

학생 1 : 전부는 아니라는게 무슨 뜻입니까?

한 스 :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여기에 온지도 벌써 10개월이 되어 갑니다. 그동안 진료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조선의 진짜 모습을 조금씩 알게 되였습니다. 조선은 너무나도 폐쇄적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조선만 고립되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선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립되여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내 말에 당황했는지 한동안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기로 했지.

한 스 : 난 의학을 전공했지만, 한때는 문학에 꽤 관심이 많았습니다. 질문 하나 할까요? 음… 거기 학생, 좋아하는 작가가 있습니까?

학생 2 : 한스 선생, 로작은 읽어 보셨습니까?

한 스 : 아직 읽어 보진 못했습니다.

학생 2 : 로작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과 무슨 문학을 얘기하겠습니까? 우선 로작을 읽어 보십시오. 거기에 많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세계 어느 문학 작품과도 비교가 될 수 없지요.

한 스 : 그런가요? 난 그저 여러분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문학과 외부 세계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학생 2 : 진리가 이미 우리 조선에 다 있는데, 다른 데서 구할 필요가 굳이 있겠습니까?

청년들을 만난다는 것에 들떠, 내가 조선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네. 토론이 더 이어지긴 했지만 토론이라기보다는, 나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성토장이었네. 나는 작별 인사를 할 때서야 겨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네.

독일에 여러분 또래의 조카가 있습니다. 제 조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얘기하겠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꿈인가. 조선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그런 꿈 말입니다. 저 같은 외국인이 여러분의 조국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했다고 느꼈다면, 혹시 그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난 누구보다 조선사람들이 잘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능력과 청춘이 오늘 보다 나은 조선을 만드는데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한 스 : 성에 차질 않네요.

김복식 : 아까 한스 선생, 말씀하실 때 정말 조마조마 했습니다. 학교담당 보위원도 같이 들었는데, 오늘 이야기를 문제삼지 않으려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스 선생이 어떤 사람인줄 모르고 초대한 것이 잘못이지요 뭐.

한 스 : 괜히 김선생한테까지 불똥이 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복식 : 지금 저를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나야 한스 선생을 추방해 버리자고 보고하면 그만입니다.

한 스 : 어이쿠,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좀 실망스럽습니다.

김복식 : 뭐가 그렇게 실망스러웠습니까?

한 스 : 학생들 말입니다.

김복식 : 난 또 뭐라구. 그럴 만도 하지요. 나도 처음에 한스 선생 얘기 들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자꾸 그 말이 머리 속에 어른 거리고, 또 듣고 싶어진단 말입니다. 그게 참 묘하지요. 그나저나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한 스 : 아니, 집에 또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김복식 : 그게 아니라, 우리 성희가 한스 선생같은 의사가 되여서 세계 여러 나라에 가서 구호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한 스 : 그게 무슨 걱정입니까. 기특한 일이지요. 혹시 김 선생, 내가 하는 일을 싫어하시는 거 아닙니까?

김복식 : 성희가 한스 선생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데, 가슴이 탁 막히더군요. 사실 조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한스 선생의 나라처럼 자신의 로력과 능력으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땅이 아니니까요.......

한 스 : 김 선생, 성희가 크면 지금의 현실이 바뀔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희망을 가지세요.

김복식 : 그렇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한스 선생이 오늘 학생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한스 : 노력해 봅시다. 좋은 날이 오겠죠,

샘, 나도 모르게 말해버리고 말았네. 노력해 보자고 말이야. 진심이었네. 성희 같은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조선이 되도록 노력해보고 싶었네.

혼자 이런 생각도 해보았네. 한 20년쯤 지나서 아까 교실에서 봤던 김대 학생들 중 한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 때 내 말을 듣고 꿈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 걸세. 지나친 욕심이라고 몰아붙이지는 말게나.

그럼 이만 줄여야겠네. 건강하게나.

1999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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