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강 폴란드와 한국의 관계

등록일 2015.10.24


폴란드의 역사를 통해 본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

- 뽈스까(폴란드) 와르샤와(바르샤바) 국립대 국제관계학 연구소 김규남 박사

   지난 시간에 뽈스까와 북조선의 관계를 살펴 보았습니다. 같은 공산주의를 선택한 두 나라는 1948년부터 외교관계를 갖고, 전쟁 중과 전쟁 후에도 좋은 관계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1989년 뽈스까의 인민이 민주주의와 개방을 선택한 뒤 북조선과는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북조선이 자유와 개방을 택하지 않고, 끝까지 체제를 지키기 위해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뽈스까는 지금 남쪽 대한민국과 교류를 늘리며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고 넉넉하게 나라살림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조선을 가리켜 가난한 꼬레아라고 부르고, 남쪽 대한민국을 가리켜 부자 꼬레아라고 부릅니다. 자유를 선택한 나라들은 때로 경제위기가 오더라도 시민들이 토론을 하고, 선거를 통해 정책을 바꿔가며 살림을 꾸리는 반면, 북조선은 아직도 권력자들이 나라 문을 걸어 잠그고, 외골수 정책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 피해를 인민이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오늘은 뽈스까가 어떻게 남쪽 대한민국과 사귀기 시작했고, 뽈스까 경제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도 북조선을 북한이라 표현하고, 남조선을 대한민국 또는 한국이라고 부르겠습니다.

   1948년 남쪽에서 대한민국이 단독정부를 만들고, 국제연합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합법정부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쏘베트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 뽈스까와 같은 공산주의 나라들은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북한만을 한반도의 정부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뽈스까는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뽈스까 정부는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를 회의 때마다 비난했고, 한반도에서 미 제국주의 군대는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지지해주었습니다. 북한의 고려연방통일방안이 나올 때에도 북한의 통일방안을 지지해 주었고, 한반도의 휴전선에서 작은 다툼이 있을 때에도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남쪽 대한민국과 뽈스까는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의 모택동과 만나 화해를 이야기했고, 쏘련과도 무기감축을 논의했습니다. 프랑스말로 데땅뜨라고 하는 국제사회의 화해 시기가 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도 빠르게 성장했던 때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서 도이췰란드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번 돈을 조국으로 보내왔고, 대한민국은 고속도로와 제철소, 항만들을 세우며 수출을 열심히 하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대한민국이 북한에 비해 나라살림이 넉넉하지 않았으나 1970년대 들어서 사정이 뒤바뀌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긴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화해 분위기를 고려하여 북한과도 대화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때 발표한 내용이 그 유명한 1972년 7•4 남북 또는 북남공동성명입니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유럽의 공산주의 나라들과 무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971년부터 뽈스까와 대한민국이 수출과 수입을 하며 경제관계를 맺었습니다. 뽈스까도 그 무렵 서유럽 자본주의 나라들과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북한만이 그때도 자본주의 나라들에게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 대립과 긴장으로 대한민국과 뽈스까는 관계를 맺지 못하다가 1970년대 들어 세계의 긴장완화와 화해 분위기를 기회로 무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체육과 학술교류를 통해 서로 비자를 발급해 주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뽈스까의 북한대사였던 백남순은 서신으로 뽈스까 정부에게 남조선 사람들에게 비자를 주지 말라고 항의도 해 보았지만, 뽈스까 정부는 정치사안이 아닌 것에는 비자발급이 가능하다며 북한의 편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체육 사절단이 뽈스까를 방문하면 북한의 감시요원이 뽈스까 공산당 사람들과 대한민국의 사절단을 따라다니며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1977년에는 스웨리예가 뽈스까 정부에게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갖도록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웨리예는 중립국으로서 뽈스까와 대한민국 사이의 다리역할을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 뽈스까와 대한민국의 무역량은 더 늘어났습니다. 쏘련의 개방과 더불어 뽈스까 정부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뽈스까에서 노동자들이 조직한 자유노조연대의 파업이 대규모로 일어났고, 뽈스까 공산당은 노동자들과 협상을 해서 체제전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뽈스까에 자유화 바람이 일어났고, 1988년부터 뽈스까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쏘련 모스끄바에서 열린 올림픽대회에 자유진영은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올림픽에 공산진영이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8년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에는 쏘련을 포함한 공산진영이 참가했습니다. 여기에는 뽈스까도 포함되었습니다. 북한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체육대회를 괴뢰정부라고 부르던 대한민국이 개최한 사실이 반갑지 않았을 것이고, 그 대회에 소련과 중국, 뽈스까와 같은 친구들이 참가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체육부 장관을 비롯한 뽈스까의 정부 사절단은 서울에 와서 대한민국 정부와 관계수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듬해 1989년 11월 뽈스까 정부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대한민국 정부와 드디어 수교를 맺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뽈스까를 포함해 마쟈르, 체스꼬-슬로벤스꼬와 같은 민주주의로 바뀐 나라들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쏘련과 중국과도 연이어 수교를 맺었습니다. 북한만 변화가 없습니다.

   1990년대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이 뽈스까로 진출해 투자했고,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뽈스까에 투자하는 나라 중 최대 투자 국가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말에 대한민국은 잠시 경제위기를 경험하기도 했으나 이내 회복하고 뽈스까에 더 적극 투자하며 지금은 200여 개에 가까운 한국의 사업체가 뽈스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뽈스까에 자동차를 팔고 있고, 한국의 텔레비죤과 손전화, 세탁기, 랭장고가 다른 나라 기업제품들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뽈스까의 가전제품 생산가공 공장을 대한민국 기업이 뽈스까에 직접 짓거나 뽈스까 공장을 사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규모가 엄청납니다. 국가가 계획한 대형 쓰레기 소각장도 한국기업이 건설하고 있고, 인터네트 통신선도 한국회사가 놔주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회사들도 한국회사들처럼 뽈스까에 많은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노동자들을 뽈스까의 조선소나 공사현장에 보내서 과하게 일을 시키고 있고, 대부분의 돈을 당국이 가져가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뽈스까는 1989년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뒤부터 빠르게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이고, 뽈스까는 이에 근접한 20위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유럽에서도 여섯 번째에 버금가는 규모입니다. 시민의식도 빠르게 성숙하여 정직하게 돈 버는 문화를 잘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1999년에는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의 군사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들어가서 국가 안보를 미국, 서유럽 국가들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2004년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해서 지금 유럽연합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유럽의 통합을 이끌고 있습니다. 자유를 선택한 뽈스까는 대한민국과 교류하고, 세계의 많은 선진국들과 협력하며 나라살림을 안정되게 구려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아직도 핵무기를 만들어 주변국가들을 긴장시키고 있고, 대한민국과 미국, 일본 같은 경제선진국들과 대화도 하지 않은 채 고립의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오늘 중국도 대한민국과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전쟁승전기념일 행사에 북한의 김정일은 참석하지 않고, 오히려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가 오래 기다려왔고, 인내를 갖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바뀔 차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뽈스까가 민주주의를 택한 뒤 과거에 겪은 범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북한 청취자를 위해 북한식 표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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