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폴란드에서 본 북한

등록일 2015.10.17


폴란드의 역사를 통해 본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

- 뽈스까(폴란드) 와르샤와(바르샤바) 국립대 국제관계학 연구소 김규남 박사

   지난 시간에 뽈스까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뽈스까 역사에서 제1공화국은 근세 귀족이 통치하던 시대, 제2공화국은 독립하고 히틀러와 스탈린에게 공격 당하기 전까지 시대이고, 지금 민주주의 정부가 제3공화국입니다. 인민공화국은 정식 공화국 명단에서 뺐습니다. 뽈스까인들이 공산당 시절을 얼마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스탈린에 의해 만들어진 위성국가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뽈스까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인민공화국 시절, 북조선과 어떻게 만났고 지금까지 지내오는지 오늘은 그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북조선을 북한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남조선은 대한민국 또는 한국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실 뽈스까가 우리 한반도와 처음 만난 것은 100년도 넘게 지났습니다. 1896년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사절단이 모스끄바를 방문하러 가던 길에 와르샤와에 들렀습니다. 그때 뽈스까는 로씨야의 식민지였습니다. 우리의 대한제국 사절단에는 민영환과 윤치호, 김득련 등이 있었습니다. 김득련은 와르샤와의 풍경에서 망국의 슬픔이 느껴진다는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민족도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합방되었고, 뽈스까는 오히려 로씨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1927년 고종황제의 아들인 영친왕이 일본왕실 사절단 자격으로 와르샤와를 방문했으니, 두 나라의 역사가 교차하는 느낌입니다.

   뽈스까와 북한이 나라와 나라 사이 주권외교를 시작한 것은 1948년부터입니다. 그 해 평양에서 외무상 박헌영이 뽈스까 정부에게 먼저 외교관계를 맺자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에 뽈스까 정부는 바로 화답하며 북한을 한반도의 합법국가로 인정해 줍니다. 남쪽에서는 대한민국이 단독정부를 수립한 시기였고, 빠리에서 열린 국제연합 UN 총회에서 많은 나라들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합법정부로 인정했습니다. 공산주의를 택한 북한은 공산주의 나라들로부터 발 빠르게 국가로서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쏘베트연방이 가장 먼저 북한을 합법정부로 인정해 주고, 그 뒤 몽골과 뽈스까가 승인해 줍니다. 중국보다 앞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해 준 나라가 뽈스까입니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명령으로 북한이 한국을 공격한 뒤에도 뽈스까는 쏘련을 통해 군대 물품을 북한에게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1959년까지 뽈스까 정부는 북한에 있는 전쟁고아 6천여 명을 자기 나라로 데리고 와서 먹여주고, 교육시켜 주고, 키워줍니다. 그때 북한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먹여준 선생님들과 영양사들이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살아 있습니다. 뽈스까는 함흥에 병원을 세워 북한 사람들을 진료하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뽈스까를 중국글자말로 바꾸어 파란이라고 하는데, 뽈스까 병원을 지금도 파란 병원이라고 부릅니다. 1956년 김일성은 뽈스까 와르샤와를 방문해서 고아원을 찾아갔고, 뽈스까 정부에게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김일성은 1984년에도 와르샤와를 방문했습니다. 남북한 전쟁이 끝나고 판문점에 중립국 감독 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스웨리예와 스위스,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가 참여했습니다. 개성에 뽈스까 군인들이 들어와 남북한의 긴장상태를 감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북한과 뽈스까는 공산주의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가까운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늘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때로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1953년 쏘련의 스탈린이 죽고, 흐루시초프가 지도자로 서면서 1956년부터 쏘련은 스탈린의 독재를 비판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북한에서는 김일성 1인 독재체제가 시작되었는데, 김일성의 경쟁자들이 차례로 숙청되던 시기입니다. 당시 평양을 방문한 뽈스까의 수상 치란키에비치는 평양 시를 둘러보고 김일성에게 "전쟁 뒤 도시 복구를 참 잘하셨습니다"라고 칭찬한 뒤 쏘련의 모스끄바에 가서 흐루시초프를 만난 자리에서는 다른 말을 했습니다. 평양에 가보니 김일성이 인민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을 우상으로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고 흐루시초프에게 비판했습니다. 흐루시초프는 이 말을 듣고, 자신도 지도자로서 우상이 되는 유혹을 늘 받지만, "진정한 지도자라면 인민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생활수준을 높여주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외국의 지도자들은 평양의 김일성 우상작업을 눈 여겨 봤고,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모양입니다. 끝내 평양에서는 지금도 김일성을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같은 공산주의를 선택한 다른 나라들도 이런 사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1967년부터 뽈스까는 경제를 일부 개방했습니다. 자본주의 나라들과 무역을 시작했고, 여기에는 미국도 포함되었습니다. 1970년 서 도이췰란드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뽈스까를 방문해서 과거 전쟁 때 잘못했던 일을 무릎 꿇고 사과했고, 두 나라는 수교를 맺어 관계를 두텁게 쌓았습니다. 당시 남쪽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도 공산주의 국가들과 무역을 하겠다고 선포했고, 여기에는 뽈스까도 포함되었습니다. 1971년부터 한국과 뽈스까는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뽈스까 와르샤와의 북한 대사는 전 외무상 백남순이었습니다. 그는 뽈스까 정부에게 한국과의 접촉을 중단하라고 수 차례 요구했지만, 뽈스까 정부는 원칙을 지키겠으나, 문화, 학술, 경제교류는 막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개성의 뽈스까 장교는 미군 장교와 함께 몰래 서울로 내려가 백화점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세계가 변하고 있는데 이때도 북한은 문을 닫고, 다른 나라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1985년 쏘련의 고르바초프가 체제를 개혁하고 개방하면서 뽈스까도 1989년 공산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남쪽 대한민국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북한은 뽈스까 정부에게 불만을 나타냈지만, 뽈스까만 공산주의를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이췰란드도 동과 서가 민주주의로 통일을 이루었고, 마쟈르, 체스꼬-슬로벤스꼬, 로므니아와 같은 중동부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모두 공산주의를 차례로 버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습니다. 유럽에서 북한의 친구들이 모두 바뀌자 북한은 이때부터 문을 더 걸어 잠그고, 주체사상, 핵개발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지금도 궁핍한 살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뽈스까가 자유민주주의 나라로서 한국과 더욱 가깝게 지내자 이에 뿔난 북한정부는 1995년 개성의 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 뽈스까 대표단을 쫓아냈습니다. 그래도 외교관계는 이어가고 있지만, 두 나라 사이의 교류는 예전 뽈스까의 공산주의 시절만 못합니다. 특별히 김정일과 권력을 다투는 과정에서 낙오한 김평일이 1998년부터 뽈스까 와르샤와의 북한대사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17년을 일하다 2015년 1월 체스꼬의 쁘라하로 옮겨갔습니다. 얼마 전 평양에 잠시 들어가 조카 김정은 곁에서 다른 대사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뽈스까는 지금 자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시장을 개방해서 다른 나라들과 자유롭게 무역을 하면서 그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시절과는 다르게 경제번영도 누리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과 유럽이 경제위기를 겪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경제 어려움을 겪을 때, 뽈스까는 계속 더하기 성장을 하며 나라 빚도 많지 않게 살림을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즘 뽈스까 사람들은 북한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신들이 겪었던 공산주의 시절의 가난과 독재가 지금 북한 사람들이 겪는 것과 비슷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에 자유가 와야 한다며 의회에서 의원들이 모여 북한의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며 토론도 합니다. 뽈스까의 교회들은 북한의 자유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뽈스까 사람들은 한반도의 남북한을 가리켜 꼬레아라고 부릅니다. 북쪽 꼬레아와 남쪽 꼬레아라고 나눠서 말합니다. 옛날 공산주의 시절에는 남쪽 꼬레아를 미국 꼬레아, 북쪽 꼬레아를 쏘련 꼬레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쪽 꼬레아는 잘 사는 부자 꼬레아, 북쪽 꼬레아는 못 사는 가난 꼬레아라고 부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어서 빨리 북한에 자유가 와서 남북한이 민주주의로 하나가 된다면 뽈스까 사람들은 우리를 멋진 꼬레아로 부를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뽈스까 사람들이 왜 남쪽 꼬레아를 부자 꼬레아로 부르는지 그 배경을 두 나라 관계를 통해 짚어 보겠습니다.

*북한 청취자를 위해 북한식 표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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