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시작한 정착의 길

등록일 2013.10.07

2007년 1월, 한국을 향해 북한의 허름한 내 집을 떠났습니다. 2008년 1월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이삿짐"을 풀었습니다. 반나절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1년을 돌아 왔습니다. 

성공을 알 수 없는 한국행을 굳이 택하게 된 데엔 부모님이 몰래 얻어다주신 한국에서 출판된 책들 때문이었습니다. 겉표지는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로 되어 있었지만 내용은 서양철학과 사회학 개론서였습니다. 가물거리던 등불 아래서 몰래 이 책들을 읽으며 북한 너머에 있는 학문들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했습니다. 이 책들 속에서 나를 보고 있던 플라톤이며 막스 베버같은 사람들이 "현, 여기는 우물 속 같지 않아?"라며 나의 탈출을 종용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 나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정신없이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모순되었습니다. 건물 전체를 꽉 채운 책들을 읽을 생각에 마냥 들떴던 마음이 어느 순간 도서관 먼 거리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가치란 희소성에서 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잠시 게으름을 피웠던 책읽기를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려면 고전을 독파해야 한다는 선배의 권유에 독서클럽에 가입도 했습니다. 물론 고전철학서적들은 다 아는 단어들인데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 많았습니다.

마침내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면접관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는 책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나?” 
“네. 북한에서도 한국에서 출판된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특이한 친구군. 비디오를 봤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책 읽었다는 건 첨 들어. 그래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지원한 이유가 뭔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를 따라가며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고, 남북 간의 의사소통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교수님의 추천으로 지역 라디오방송국에서 수습 제작자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나는 여러 방송국에 ‘성공한 새터민’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나는 한국에서의 정착경험을 비롯해 시사관련 담론, 북한 교육상황 등에 대해 나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살며 적응해 갔습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손전화에 빠져 시간을 죽이기보다는 책을 읽었고, 대학친구들과 술집을 찾아다니며 흥성거리기 보다는 체육관을 찾아 운동을 했습니다. 여자 친구와 만날 때도 영화관이나 커피숍 보다는 함께 학원에 다니고 미술관에 간다거나 자원봉사를 하였습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 완전히 적응했어, 대단하지?” 라고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처럼 다른 사람보다 빠른 속도로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좋아하도록 해주신 부모님, 좋은 책을 소개해준 하나센터 선생님이나 독서클럽 선배들, 거기에 공부하기 편한 도서관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특질과 환경이 잘 맞아 떨어진 겁니다. 말 그대로 행운이 내 손에 떨어진 셈이지요.

나의 정착의 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가 수두룩하고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한국국민들과 나와 같은 탈북자들이 협력하며 하나를 이루는 날까지 나의 정착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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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김주현 씨를 만났습니다.  

김주현씨는 2007년 조선을 떠나 한국으로 왔는데요. 주현씨가 조선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국영화와 미국 영화를 보다 검열에 걸려서 노동 단련대에 갔을 때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한국에서 출판된 책을 읽고 북한이라는 사회가 우물안 같다고 느꼈다.)  
 
주현 씨는 두만강을 건너다 총에 맞을 뻔 했고, 또 윁남에서 메콩강을 건널 때는 배가 뒤집혀 죽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갖은 고생을 하고 한국에 도착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서점에 책이 너무 많은 점에 놀라웠고 먹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천국같이 느껴졌다. )

한국에 왔을 때 25살이었던 주현 씨는 바로 대학 입학 면접을 치렀습니다. 대학에 합격했는데도 대학에 못 다니게 된 사연이 있다는데요.
(입학 전에 등록을 해야 된다는 것을 몰라서 등록을 못했고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대학에서 신문, 방송 등 언론과 관련된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언론 매체와 관련된 과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요.
(통일이 되면 신문과 방송에 의해 세뇌당하는 현실을 개혁하고 싶었다.)

주현 씨는 1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건 무엇이고 가장 재밌는 일은 뭘까요?
(조모임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토론을 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

한국에 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한국사회에 실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에 대한 미디어의 오보, 그리고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에 실망하기도 했다)

김주현씨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노숙자나 지체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선을 위한 선은 진정한 선이 아니다. 그냥 마음을 다해 하는 거다)

한국에 먼저 온 선배로서 이제 막 한국에 온 탈북 청년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의심을 많이 하라고 하고 싶다)

주현 씨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바로 책을 쓰는 건데요.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책을 집필하길 응원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철학 에세이를 쓰고 싶다)

CM1 양희은_네 꿈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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