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의 기부금

등록일 2013.09.17

나는 여느 탈북자들과는 좀 다른 경로로 한국에 온 탈북자입니다. 2003년 8월 한국으로 밀입국을 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구로구에서 일용직으로 4개월 간 일했습니다. 한국에 오기 위해 몸을 의탁했던 부로커 비용을 갚기 위해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해 4백만원을 갚았는데도 2백이 더 남더군요.

그러다 퇴근길에 단속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구로경찰서, 국정원 조사를 거쳐 탈북자들의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의 강서구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사회에 나온 나를 맡았던 담담경찰은 더 이상 부로커 비용을 주지 말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난 꼬박 두 달 동안 일해 번 돈으로 남은 부로커 비용을 다 갚았습니다. 비록 내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부지런하면 살 수 있다!’ 이 한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 일거리가 없는 날을 빼고는 매일매일 일했습니다. 한 달에 보름만 일해도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는 수입이 충분했습니다. 그러다 한 일 년 못되어 아내도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내도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이라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평탄했던 우리 부부의 한국살이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건강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아내가 위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위의 2/3나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암은 원래 재발 가능성이 높은데 2년, 5년이 고비랍니다. 하늘이 도왔을까요, 위암수술을 받은 아내는 지난 5년 동안 아주 잘 싸우고 버텨줬습니다. 이제는 재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북에 있었으면 살기를 바랄수도 없었을 텐데 우리는 부부는 지금 제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루는 텔레비전을 보는데, 세 살이나 되었을까요. 겨우 걸음마를 뗀 어린 아이가 망치를 들고 돌을 깨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는 이처럼 어린 아이들이 하루 종일 돌을 깨어 한 끼를 보장한다고 하더군요. 새까만 이 아이들의 얼굴위로 북한의 우리 아이들 얼굴이 겹쳐 보였던 것은 왜였을까요?

여기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곳에 기부를 하며 삽니다. 부자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공으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 끝에 ‘굿네이버스 인터네셔날’을 찾았습니다. 굿네이버스 인터네셔날은 세계적인 구호단체로 아동보호사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나는 내 수준에 맞게 2012년 12월부터 한 달에 만원씩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만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내가 이 사회로부터 받은 보살핌에 대한 성의입니다.

나는 한국에 와서야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달에 만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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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김수철 씨를 만났습니다.  

올해로 78살이 된 김수철씨.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 18살에 조선으로 갔습니다. 조선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식량을 구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으로 올 생각은 아니셨다는데요.  
(중국에 와서 밥 한 그릇이라도 실컷 먹을 생각으로 넘어왔다)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김수철씨. 한국에 왔을 때 69살이었던 김수철씨에게 한국의 첫 느낌은 어땠을까요.
(모든게 새롭고 신기했다. 한국과 조선은 1세기 차이가 난다고 느꼈다) 
 
김수철씨는 한국에 와서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공사현장에서 막노동 일을 하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일당 5만원이나 벌 수 있다는 게 꼭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노가다 일을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게 기뻤다)

김수철씨는 한국 정착 교육 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한국에 대해 참 놀랍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발전소가 모두 기계로 돌아간다는 점/ 독립기념관에 반대파인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선생의 항일 운동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김수철씨는 나이가 많아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지만 최근 아파트의 주민대표직을 맡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라 보수가 없어도 기쁘게 일하고 계십니다.
(일자리가 있다는 것,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 참 기쁘다)

동대표가 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주차장에서 차와 사람이 부딪히지 않도록 규칙을 새로 만든 일입니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봉사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하시는데요. 
(주차장 안전 규칙을 만들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 하지 않도록 경고문을 만들어 붙였다)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죽을 때까지 사회에 봉사하는 것으로 갚고 싶다는 김수철씨.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 사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돈을 벌 필요가 없다, 죽기 전까지 사회에 봉사하며 살고 싶다)

CM1 현경과 영애_아름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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