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

등록일 2013.07.01

내 생애 봄날, 오늘은 탈북자 이연희 씨 이야기입니다.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방황하며, 쫒기며 살던 생활을 끝내고 꿈을 찾아 대한민국에 입국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살기위해 몸부림치고 흘렸던 눈물들도 이젠 조금씩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대신에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삶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하나원 교육을 수료하고 사회의 첫 발자국을 내 디디던 그때,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우선은 정부에서 배정해준 아파트에 가족들과 함께 첫 보금자리를 틀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직업훈련도 받았다. 생각보다 쉽게 회사에 입사하여 직장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여 첫 월급도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난, 늘 꿈만 같은 날들만 있을 줄 알았다. 당시 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몰랐다.

여러 가지 시간제 일을 하다가 당당한 회사원이 된 것은 2003년 3월이었다. 구인구직 광고를 보고 찾아가 면접을 봤고, 입사 하였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가 들어간 회사는 전자회사였는데, 세라믹, 아이씨, 콘데서 같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부품을 보고는 이렇게 정밀한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 해보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내가 못할게 뭐가 있어? 그래 해보자. 해보는 거야!” 

이렇게 결심하고 난 출근 하였다. 출근해 보니 입사동기들이 여러 명 있었고 반장으로부터 일할 공구들을 받았다. 우리 회사는 LG전자의 하청업체로, 생산된 제품은 완벽하여야 했고 작은 불량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남북으로 갈라져 산 6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언어의 장벽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함경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37년을 살다 온 나는 말하는 억양이 투박하고 또 한국문화도 잘 몰랐다. 그러다 보니 언어 문제로 입사 동기들끼리 분쟁도 많았다. 한번은 입사동기들이 나에게 “연희씨 연희씨” 부르기에 나도 동료들을 그렇게 불렀다. “경자씨, 정금씨” 이렇게. 하지만 어느 날 부터인지 동료들이 나에게 욕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알고 보니 나이가 두세 살 우이니 언니라고 불러야 되는데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니 굉장히 버릇없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여기 한국의 직장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관리자들이나 선배들, 동료들이 ‘야야’ 하지 않고 ‘누구누구 씨’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선배들이나 나이 많은 동료들에게 ‘누구누구 씨’라고 불러댔으니 눈 밖에 날 법도 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살이에 서툰 나를 좀 가르쳐 주면 안 되었던가. 정말 몰라서 그런 건데 욕을 먹고 따돌림을 당하자 억울하고 서러워 눈물만 났다.

몇 년 전 대학을 다닐 땐 이런 일도 있었다. 2009년 그해 봄날, 내가 다니는 대학사회복지학과에서 MT가 있었다. 교수님과 학과 선후배 학우들 모두 함께 모여 회의도 하고 재미있는 오락도 하는 시간이였다. 학생들이 교수님들의 지도하에 자신의 견해와 목표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고, 내 차례가 점점 가까이 올수록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는 가까우면서도 먼 곳, 북한을 탈출하여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연희입니다.” 라고 말꼭지를 뗐다. 그러고 나서는 사회복지란 말이 북한에는 없지만 출산, 산전산후 휴가제 제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 지금은 여기서도 남편들이 일주일간 출산한 아내를 돌볼 수 있는 산후 돌보미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저는 둘째아이를 출산하던 1995년, 우리 정부의 배려로 이와 비슷한 혜택을 받았습니다....”

어찌어찌 발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는데 한 남자학우가 이의 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뜸 “우리나라 국민이 맞습니까? 우리나라 국적을 가졌습니까?” 라고 물었고, “이 나라 국적을 가졌으면서 북한을 우리라고 부르는 것은 뭡니까? 북한, 남한 정확하게 경계를 그어 말씀해 주십시오.” 한다.

많은 학생들과 교수님들 앞에서 그렇게 정면으로 지적을 들은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교수님은 그 학생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발언을 멈추게 하려 했지만 그 남학생은 끝내 자기 할 말을 다 하였다. 그 후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언어 습관에는 “우리”라는 말이 배어 있어 이 말을 자주 쓴다. 북한을 좋아해서, 칭송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실제 북한을 알리고 싶어 나선 발언이었는데 의도를 상실한 채 망쳐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 남학생은 내가 많은 학생들과 교수님들 앞에서 북한을 ‘우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그 남학생은 나보다 1년 선배였다. 후에 사이가 좀 가까워지자 자신도 부드러운 남자라며, 탈북자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우리 가족하고도 알고 지낼 정도로 친해졌다.

60년 넘게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언젠가 통일의 그날은 꼭 오겠지만 그전에 문화교류만이라도 잘 되어 자라나는 세대들이 서로의 벽을 허물고 원만한 소통을 이루며 지냈으면 좋겠다.

------------------------------------

2만 7천여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이연희씨를 만났습니다.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했던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왔던 이연희씨는 처음부터 한국에 올 생각은 없었습니다.
(중국 공안들에게 붙잡힐까봐 한국으로 왔다) 

이연희씨는 인천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화려한 도시를 보고 참 놀라웠지만 과연 한국이 스스로의 기술로 경제 발전을 이룬 걸까 의심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 경제 발전에 대한 의심)

이연희씨는 처음 한국에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막막 하기도 했지만 비교적 빨리 취업할 수 있었다)

취업 후 처음으로 월급 통장을 갖게 됐을 때, 그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름이 찍힌 월급 통장을 만들고 한참을 바라봤다)

한국에 와서 처음 10개월 동안은 경상도에 살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왔는데요. 지방에서는 못 느꼈던 도시 생활의 팍팍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의 텃새, 차별)

그러나 딸아이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서는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온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하는데요.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전학을 오니까 전학생일뿐 북한에서 온 아이라는 걸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적응이 빨랐다)

서울에 온지 얼마 안돼서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됐는데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빨리 이겨내고 힘을 냈습니다. 
(이혼이 힘들었지만 빨리 털고 일어났다)

이혼을 아픔을 털어내고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사정으로 일을 그만둬야 했을 때는 정말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위기가 오히려 삶의 전환점이 됐다는데요.
(아직도 정서적인 어려움이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고단한 삶이었지만 공부하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공부에 대한 행복을 알았다)

두 딸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들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이연희씨, 한국에서 두 자녀와 행복한 삶 이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삶을 살고 싶다)

CM1 이문세_행복한 사람

 

댓글 (총 0 개)
 
덧글 입력박스
덧글모듈
0 / 1200 bytes
이모티콘 강차랑
지방에서 서울입성(이사하는것)을 대단한 결행(결심,실행)에 박수 보냅니다.졸업하시면 더넓은 세상이 보이고 혼자서도 진로를 찿으시겠고 교수님들과 상담하십시요.첫째 건강유지하시고 가끔 글을, 전71살 졸업못하고 수술등 아프기만   13-07-02  | 수정 | X 

방송 프로그램 바로가기
개혁개방의 기적
기획 론평
다시 쓰는 조선교과서
등나무집
라지오 련속극 나는 김정일의 료리사였다
라지오 초대석
리일남 수기
부치지 못한 편지
북조선의 인권을 말하다
북조선의 진실과 허위
추적 사건과 진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본 북조선의 인권
인권 깜빠니아
인민의 목소리
조선경제 어디로 갈것인가?
조선인민들에게
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평양 25시
황장엽 회고록
펀펀뉴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청춘, 꿈을 향해 뛴다
통일 대담
남북동행
조선노동당은 혁신해야 한다
한 녀맹원의 중국일기
북톡톡
내 생애 봄날
조선노동당 간부에게
화제의 인물
알판(CD-R) 속 한국 이야기
러시아 유학생의 북한 역사 이야기
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북한 동포들의 이야기
풍자극, 정은이와 룡해
박피디의 슬기로운 미래생활
나의 소중한 날들
한국 생활기
2030 통일진심
북한이 살 길은 개혁개방뿐이다
헬로우 잉글리쉬
리태성의 한바탕 속풀이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리태성의 한바탕 속풀이
김정호의 시장경제 바로알기
청춘통일
다큐멘터리 김정은
한국경제사
젬마가 간다
기획취재, 김정은의 경제정책을 진단한다
세.젤.궁 청춘이야기
조선으로 떠나는 여행
남조선에 대한 궁금증, 리광명이 풀어드립니다
노래실은 편지
자유조선방송 극본 공모 당선작, <걸어서 영변까지>
9개의 비극에서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자
북한에서 왔습니다
알판으로 보는 세상
이지연의 책 읽는 라디오
황장엽 회고록
라디오 연속극,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도 겐지
개혁개방으로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고민체신소
광복 6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한 1분
북한 시민교육,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신비한 직업사전
니하오, 중국
북한 시민교육, 인권이란 무엇인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마주보기 캠페인
북한 시민교육, 언론이란 무엇인가
국민통일방송 캠페인 <통일을 기다립니다>
생존중국어
련속극으로 남조선 엿보기
수군수군
통일광장
다시 쓰는 김일성 혁명력사
다큐, 독재자의 말로
남북중(南北中), 세 여자 이야기
남조선은 어떻게 경제강국이 되었나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열전"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정의와 진실
조선민주화 전략 강의
죄악으로 가득찬 김정일의 인생
민족의 이름으로 고발한다
집중분석, 김정은은 누구인가?
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