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봄날의 시작

등록일 2013.06.24

저는 19살에 대한민국으로 입국했습니다. 한국에 온지는 3년 되었습니다. 지금은 여명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고3 김순정 입니다. 북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김정일․김일성 장군님뿐이고, 조선어철자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와 어머니께 한글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탈북청소년을 위한 여명학교를 다니며 처음으로 ‘꿈’이란 것을 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저에게 꿈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을 심어준 나라입니다.

저는 졸업하면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을 희망하고 지금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 학교라는 것을 다니니 정말 살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정말 많이 행복했고, 아 이제는 자유민주주의 땅에서 마음 놓고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 때가 내 생애 첫 봄날이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봄날이 저에게 찾아와서 제 안에 있던 꿈이라는 씨앗의 싹을 틔우고 꽃피우고, 하나, 둘씩 어려운 난관을 뚫고 나와서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3년 동안 살면서 ‘참 잘 살아왔다, 보람있게 살았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저는 대단히 감사합니다. 처음 왔을 때 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 다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고 있으니 한국 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많은 나이에 대학 다녀야 하지만, 저는 공부를 배우는 것에서는 포기하지 않았고 늦었다고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초등검정고시를 쳤고, 두 번째 중등검정고시를 봐서 2012년 5월 15일에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더 기쁜 것은 제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뽑혀서 전국검정고시총동문회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글도 잘 모르고 수학도 더하기 빼기밖에 모르던 제가 시험 봐서, 그것도 첫 번에 합격했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쳐 자랑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진학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비록 늦은 나이에 들어가지만, 그것이 배우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한에 있을 때, 학교운동장에서 교실을 기웃거리며 학생들이 가르침을 받는 소리를 듣던 생각을 하면 너무나 슬프고 억울해서 무능한 부모님을 원망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와서는 마음껏 힘껏 배울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하는 것 말고도 세상 경험을 참 많이 했습니다. 3년을 한국에서 살았기만 아직도 신기한 것들이 많고 새로운 것들이 있어서 언제 다 배울까 걱정이 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말투가 달라서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무리 티를 안내고 한국말, 서울말로 하려고 애를 써 봐도 시장가면 시장가게 아주머니들이 ‘중국 조선족이예요? 연변에서 왔어요?’ 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예 북에서 왔어요’ 라고 말할 때도 있고 ‘아니요 경상도에서 왔어요’ 라고 거짓말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냥 북에서 왔다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둘러댈 때도 있었습니다. 더 난처한 경우는, 경상도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면서 자기도 그곳이 고향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날 때였습니다. 그럴 때는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손에 진땀을 쥔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또 북에서 왔다고 하면, 이것저것 많이 물어봐서 하나하나 설명하기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왔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정말 모르는 사람은 비행기 타고 왔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우리는 정말 힘들게 강 건너고 산을 넘어 제3국 국경을 넘어왔다고 설명할 수도 없어서 속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다 같은 사람인데, ‘빨갱이라서 얼굴이 빨간색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라고 황당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북한 말투가 직설적이고 강해서 싸우나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는 좋은 뜻으로 얘기를 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오해해서 기분나빠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모를 때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분이 저에게 ‘너 잘 지내고 있어? 뭐 괜찮아?’ 물을 때는 우리는 보통 ‘일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줍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것을 상당히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한국말이지만 서로 뜻이 달라서 오해하기 쉽고 한순간에 다 고쳐지는 것도 아니므로 차츰차츰 배우며 적응하려고 무지 애를 씁니다. 억양을 고치려고 Tv를 보면서 따라할 때도 많고, 버스에서 애들이 말하는 것을 가만히 엿들어 그 억양을 따라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빨리 배우고 싶고 예쁜 서울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같이 무뚝뚝하게 얘기하는 것에 비하면 서울 말투는 사람 마음을 다 녹여줄 듯 하는 소리여서 듣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국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될때가 있습니다. 가끔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그 사람들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못 봤으니까 북한 사람들을, 또 어릴 적부터 북한이나 남한이나 그렇게 가르쳐 주니까’ 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북에 있을 때는 남조선 사람들이 못생긴 괴물이라 생각했으니까요. 남한도 역시 그렇게 인식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것을 허물고 그런 생각을 없애주는 다리는 바로 우리 탈북인 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우리가 온전히 정착하고 잘 생활한다면 그런 나쁜 생각들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북한의 정치체제가 나쁜 것이지, 그 백성들은 대한민국 국민과 똑같은 민족이고, 같은 나라 사람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 열심히 살아갑니다. 제가 바라는 꿈, 제가 향해야 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또한 많지만 저는 그것 때문에 위축되지 않겠습니다. 그 어려운 북한 땅을 목숨 걸   넘어선 우리가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무엇이 나를 가로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지금까지 여러 고난을 이겨낸 것 같이 이런 어려움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한국에 와서 정말 행복합니다.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다 배수 있는 이 곳, 무엇보다 자유가 있는 이 곳, 나 자신이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이 대한민국에서 많이 배워서 내가 바라는 꿈도 이루어서 남과 북의 통일의 주역이 되기 위해 힘써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평화의 광장에서 서로 손잡고 노래를 부르며 춤추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통일의 그 날이 올 때까지 최선 다해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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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여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김향 씨를 만났습니다.  

중국에서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고아원에서 생활했던 김향 씨는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두려움도 많았는데요.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중국에서 드라마로만 봤던 한국 사회를 직접 와서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자유의 세계로 왔다는 것이 설렜다)

김향 씨는 한국에 와서 여러 가지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 공원이 가장 재미있고 또 신기했다고 합니다.
(놀이공원을 보고 이런 곳도 있구나 생각했다) 

김향 씨는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원래는 중국 학교를 갈 수 없었지만 신분을 위조해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어린 시절 위조된 신분 때문에 받은 설움이 참 많았습니다.  
(공부를 잘했지만 상도 못 받고, 반장도 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엄마를 만나 함께 사는 것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엄마와의 갈등)

처음에 한국에 적응하면서 북남간의 언어 차이가 가장 힘들었는데요. 특히 물건을 살 때 물건을 지칭하는 단어가 조선과 많이 달라 난처할 때가 많았습니다.
(옷을 살 때, 후드티라는 용어를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김향 씨는 탈북자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왜 일반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나이차이, 문화차이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을 공부하고 있는 김향 씨는 이제 대학 진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걱정이 많습니다.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
 
한국에는 탈북자들을 위한 대학 입학 특별 제도가 있어 비교적 쉽게 대학에 진학 할 수 있는 일이 참 감사하다는 김향 씨.
(탈북자 특별 전형이 있는 한국 사회에 참 고맙다)

가고 싶은 대학과 과도 정했습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과에 가고 싶다)

한국 학생들은 여유롭고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많이 꿈꾸는데요. 김향 씨는 대학에 가면 어떤 걸 제일 많이 하고 싶을까요?
(동아리 활동, 한국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

김향 씨는 제주도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돼서 매우 들뜬 모습이었는데요   
(제주도를 가보고 싶었는데 수학여행으로 가게 돼서 기쁘다)
 
아직도 중국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탈북 고아들을 돕고 싶다는 김향씨,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또 원하는 꿈 꼭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탈북 고아를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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