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세상이 보였다

등록일 2013.06.17

- 내 생애 봄날, 오늘은 탈북자 김종범 씨 이야기입니다. -

나는 북한에서 10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루명을 쓰고 보위부에 잡혔으며,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운명에 처하자 죽을 각오로 탈출해 3국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게 되었다.

한국에 정착해 산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었다. 한국에 처음 와 1년 동안은 교육과 산업시찰 같은 체제적응 교육을 받았다. 그런 다음 나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착초기 나는 한국에 대한 몰이해와 물질만능의 허황한 꿈을 꾸다 수많은 시대착오를 겪게 되었다.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나의 어리석은 헛된 꿈은 돈의 노예라는 멍에를 스스로 쓰게끔 만들었다. 돈에 대한 집착은 나를 끊임없이 조롱하면서 괴롭혔고 방황의 연속이라는 대가를 안겨주었다. 

대기업에 취업한 내게 처음 차려진 일은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 보조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말이 안전관리 보조원이지 현실은 현장의 이것저것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처음 대기업에서 나를 받아준다고 했을 때, 남들처럼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서 근무할 것으로 생각했던지라 그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더구나 함께 정착교육을 받았던 동료들이 훌륭한 대기업에서 사무실 성원으로 일한다는 소문은 붙는 불에 키질하는 격이 되어 가뜩이나 들뜬 나의 마음에 바람을 일으켰다. 

결국 내가 하는 것은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고 항상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결국 나 스스로를 육체적, 정신적 폐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출근해 하루 종일 힘들게 온갖 궂은일에 시달리면서 외롭고 지칠 대로 지쳐갔다. 이런 내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주위의 고마운 분들이었다. 출근거리가 멀어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출근하는 내 사정을 알고 회사식당에서 아침을 하도록 배려해주고, 외로워하는 나를 형제처럼 대해주면서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30여 년간 시키는 일만 하면서 고정격식화 된 삶을 살아온 나는,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동안의 생각은 다 버리고  전혀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만이 개척할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딴 용접기술 자격증이 있다는 걸 생각해 낸 나는 회사에 말해 용접노동부터 다시 시작했다. 매서운 겨울 추위와 싸워가며, 땀으로 미역을 감다시피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며 노동을 하다보면 북한에 두고 온 비롯해 온갖 걱정거리, 잡생각들을 잊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용접공으로 일하는 나를 보고 함께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함부로 인신모욕하고 괴롭히기도 했다. 탈븍자 망신시키느라고 기껏 용접이나 한다고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개의치 않았으며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초심을 버리지 않고 누가 보건 말건 열심히 일했다. 이런 내 모습에 함께 일하던 공장장과 관리부장, 그리고 동료들이 관심과 배려로 돌려주었다. 외로워하는 나를 위해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여직원과 가정을 이루도록 힘을 보태줬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교회까지 주선해 주었다. 또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배워야 한다면서 하루일이 끝나면 체계적인 업무지식과 컴퓨터를 가르쳐 줬다. 덕분에 난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과 가스안전관리자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감사함만을 안고 회사생활을 하던 중, 마침내 용접을 시작한 지 7년이 되는 해 본사의 발령을 받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물론 본사에서도 내게 처음 차려진 일이란 게 서류정리가 전부였고, 내 개인 책상이나 전화기가 주어지지도 않았다. 여기서도 나는 그저 끈질긴 인내심으로 업무를 배워나갔다. 그렇게 일 년후에 정식업무를 받았고, 또 일년 만에 대리가 되었고,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어갔다.

나는 큰일을 한 사람도 아니고 이름난 박사가 된 것도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아는 것도 아니다. 한 직장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하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주변의 아는 사람들은 내가 큰일이나 한 것처럼 칭찬한다. 그 칭찬 속에 나를 있게 해준 고마운 분들의 노력이 얼마나 깃들어 있는지 나는 안다.

나를 비롯해 많은 탈북자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허황한 망상 즉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정착성공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돈과 정착성공에 대한 강한 집착과 조급함에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돈과 성공이라는 굴레에 매이게 되고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고통에 빠뜨리고 만다는 것을 20년을 생활해 보니 알겠다.

하루빨리 정착하는데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대신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잘 소통하며 대인관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 간혹 신경질과 짜증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인내하고 관계에 꾸준함을 이어갈 때 정착도 성공으로 갈수 있다. 사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새로운 한국 땅에서 정착해 사는 길에도 왕도가 없다. 아기가 걸음을 배우듯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우고 그 길에 인내하는 수밖에 길이 없다.

한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자가 어언 2만 5천이 넘었다. 우리 탈북자들은 성공이라는 아름다운 추억보다 후회와 좌절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하지만 아쉬움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매사에 감사하고 초심을 잊지 않고 살다보면 그 끝에 우리가 희망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써나가는 우리들만의 성공적인 정착이야기를 위해 오늘도 나를, 우리 탈북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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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여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김종범씨를 만났습니다.  

김종범 씨는 로씨야 벌목장에서 한국 물건을 팔다가 반동으로 몰려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탈북을 결심할 때 중국이나 로씨야 같은 제 3국이 아니라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같은 된장국과 김치를 먹고 사는 한민족이라는 생각/ 한국 물건에 대한 동경)

김종범 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을 만큼 신기하고 또 행복했다고 합니다. 
(놀랍고 행복했다)

자유로운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놀랍고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 피우는 여성/ 경찰과 싸우는 시민)

94년도에 한국에 와서 바로 대기업에 입사한 김종범씨, 좋은 회사에 들어갔지만 막상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데요. 그래서 자진해서 용접 기술을 배웠습니다.
(용접을 시작한 이유)

김종범 씨는 용접을 하면서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꺼려하는 힘든 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대기업 과장까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접을 선택한 것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현장에서 5년을 일하고 본사 사무실로 오게 됐을 때 너무나 기뻤지만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소통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언어적 차이 때문에 동료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기도)

김종범 씨는 한국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조선과는 다른 한국의 가정생활 때문에 아내와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쇼핑하는 일, 목욕탕 가는 일)

한국에서 새로운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게 조선에 있는 아내에게 미안하진 않은지 물었습니다.
(아내가 통일되면 형님에게 남편을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어떤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조선에 있는 가족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김종범 씨.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서 직위도 높아지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졌지만 덜컥 위암을 진단받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원망하는 마음이 앞섰는데요, 그렇지만 암 진단으로 인해 건강을 챙길 수 있게 돼서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암이 오히려 선물이었다)
 
삶의 좌우명이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종범 씨, 앞으로도 그의 행복한 한국 삶을 응원합니다.
(내 삶의 원동력은 감사)

CM1 칼잡이 오수정 OST_성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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