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삶의 슬픔을 즐거운 추억에 묻다

등록일 2013.05.20

2005년 1월 나는 드디어 하나원을 퇴소하고 한국사회에 나오게 되었다. 16평짜리 집을 받은 첫날 청소해주시는 봉사자분들이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렸다. 이제 방금 받은 집엔 하나원에서 준 전기 밥가마와 이불이 전부여서 길 다란 몽둥이를 휘둘러도 걸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내 집이라 너무 좋았다.

한 며칠은 밖에도 안 나가고 봉사자들이 가져다준 밑반찬만 가지고 밥을 먹었다. 처음으로 혼자 밖에 나갔다가 길도 모르겠고, 동사무소가 어디에 붙었는지 아무것도 몰라 집 주위를 뱅뱅 돌기도 했다. 한번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인터폰으로 잠간 내려와 달라고 하였는데 동사무소에서 온 전화인줄 알고 택시를 타고 동사무소에까지 간 적도 있다. 관리사무소가 도저히 헷갈려 북한의 동사무소인줄 알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나는 한국사회에 빨리 적응해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같이 온 동생한테는 공부하라고 하고, 나는 지역 복지관의 소개로 한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손님이 많은 저녁에 몇 시간만 일하란다. 그래서 낮에는 문방구점에서 오후 4시까지 하는 일을 구했다. 두 개의 일을 가진 투잡족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나는 문방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 어린학생들이 물건을 사러오는데 스탠플러, 스탬프, 골판지...... 나는 수천가지에 이르는 문방구의 이름조차 몰랐다. 나름대로 열심히 수첩에 적어서 이름을 기억하려 했지만 결국 닷새 만에 잘리게 되었다. 그때 사장님은 나에게 한국사회를 6개월만 살아보고 다시 오라고 하였다. 닷새간의 월급봉투를 받아 쥐고 집으로 걸어오면서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북한에 있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친구들이 그리웠다. 가로등의 불빛들마저도 “이곳에 네가 설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하면서 마치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문방구점에서 잘린 이후 내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한 달 동안 집에 틀어박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고, 종종 작은 오빠한테 전화해서는 ‘왜 북한에 있는 우리에게 연락해서 한국에 오게 했는가’ 라며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하지요? 문득 내가 이 사회에서 살려면 도전하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시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갈 결심을 세웠다. 하지만 제일 두려웠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영어였다. 북한에서 로씨아어를 배운적이 있지만 여기 한국에서는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대학공부가 거의 불가능하다. 대학에 가자면 영어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것이 매우 두려웠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사선을 넘어왔는데 그깟 영어배우는 것이 무슨 대수냐’ 하는 배짱이 생겼다. 생각해 보면 문방구점에서의 실패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원동력이 된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저녁에 영어학원에 다녔다.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까지는 컴퓨터학원에서 자격증공부를 했었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영어를 배웠다. 다행히 “자유터 학교”라는 곳에서 남한 대학생들이 탈북학생들을 위해서 무료로 영어과외를 해줬다. 그렇게 1년간 영어를 배우고 결국 다음해인 2006년도 3월, 나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광고홍보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영어공부를 멈출수 없었다. 전공과목 절반이 영어교과서였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나는 나보다 나이가 11살이나 아래인 학생들이랑 공부했다. 첨에 학교에 입학해서 과 엠티를 갔었는데 우리 과 학생들이 나를 매우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가 많다고 말하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여기 문화를 따르려고 일부러 내가 먼저 나가 씩씩하게 자기소개도 하고 노래도 한 곡조 불러줬다.

4년의 대학과정이지만 나는 5년 가까이 대학을 다녔다. 졸업하려고 보니 기본과목 한 과목을 채우지 못해 한 학기를 더 다녔고, 마지막학기는 졸업논문을 쓰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대학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견디어 결국 졸업했다. 대학기간동안 결혼까지 하게 되면서 대학생활은 곱절로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고마웠고 감사했다. 신분의 한계를 만들어놓고 있는 북한에서는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가 성분이 나쁜 나를 대학에 보내주겠는가? 자유대한민국이니 가능할 것이다. 항상 고마운 이 은혜를 늘 간직하고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 하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어려운 고비를 견디게 하였다.

하지만 중간고사나 학기말고사 같은 시험 기간이 오면 나의 눈은 항상 핏줄이 서 있었지만 성적은 그닥 좋지가 않았다. 그때마다 학교를 관두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씩 들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이 나라에 오기위해 끔찍했던 나날들과 함께, 또한 그 길에서 사망한 불쌍한 우리 북한탈북자들을 생각하였다. 또 지금도 북한의 독재자 밑에서 온갖 강제노동을 당하면서도 밥도 변변히 못 먹는 북한주민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자유의 나라에 와서 무료로 대학까지 보내줬는데 공부가 힘들다고 하는게 말이 되느냐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견디어냈다. 그렇게 해서 대학교를 마쳤고, 그해 12월 서울시청의 공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서류와 면접에서 다른 지원자들을 이기고 서울시청에서 일하게 되었다.

현재 나는 서울시청에서 새터민 취업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계약직 공무원이지만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언젠가는 열심히 묵묵히 버텨만 준다면 나에게는 분명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하는 일은 후배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상담해주고 알선해주는 일이다. 특히 후배탈북자들에게 내가 선배탈북자로써 경험을 알려주고, 정보를 주고, 또한 일자리를 알선이 성공했을 때 느끼는 행복과 보람은 그 어디에도 비교하지 못할 만큼 크다.

한국에서의 9년 가까이 되는 내 정착과정을 돌아보면서 ‘나는 정말 복 받은 인간이구나’ 하고 느낀다.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내 조국이 있어 너무 고맙고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통일의 그날이 오면 대한민국에서 받은 보살핌을 북녘동포들에게도 전하는 통일의 징검다리가 되어 고향땅으로 달려갈 것이다.

------------------------------------

2만 7천여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송은희씨를 만났습니다.  

하나 뿐인 동생을 지키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는 송은희씨, 2004년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대한민국에 당도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처음 느꼈던 마음)

한국에서의 삶은 행복했고 또 가슴 벅찼지만 그동안 살아왔던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일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특히나 언어적 차이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요
(적응의 어려움)

문화적 차이 때문에 곤란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콩 한킬로 그리고 통장에 대한 이야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먼저 이 사회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송은희씨. 그래서 그녀는 대학 진학을 하게 됐습니다.
(대학 준비/ 진학)

송은희 씨는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공부했는데요, 그러나 처음 접하는 한국의 교육체계에서 대학 공부를 따라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에서 학업의 어려움)

공부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대학 시절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습니다. 지금은 7살 난 아들도 있는데요
(남편을 만나게 된 이야기)

한국에 정착한지 10년이 되어가고 있는 송은희 씨에게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물어봤습니다.
(탈북자 교류 행사가 많아지길)

송은희 씨는 탈북자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녀가 북에 있는 동포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습니다.   
(북의 동포들에게)

CM1 서영은_혼자가 아닌 나

 

댓글 (총 0 개)
 
덧글 입력박스
덧글모듈
0 / 1200 bytes

방송 프로그램 바로가기
개혁개방의 기적
기획 론평
다시 쓰는 조선교과서
등나무집
라지오 련속극 나는 김정일의 료리사였다
라지오 초대석
리일남 수기
부치지 못한 편지
북조선의 인권을 말하다
북조선의 진실과 허위
추적 사건과 진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본 북조선의 인권
인권 깜빠니아
인민의 목소리
조선경제 어디로 갈것인가?
조선인민들에게
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평양 25시
황장엽 회고록
펀펀뉴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청춘, 꿈을 향해 뛴다
통일 대담
남북동행
조선노동당은 혁신해야 한다
한 녀맹원의 중국일기
북톡톡
내 생애 봄날
조선노동당 간부에게
화제의 인물
알판(CD-R) 속 한국 이야기
러시아 유학생의 북한 역사 이야기
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북한 동포들의 이야기
풍자극, 정은이와 룡해
박피디의 슬기로운 미래생활
나의 소중한 날들
한국 생활기
2030 통일진심
북한이 살 길은 개혁개방뿐이다
헬로우 잉글리쉬
리태성의 한바탕 속풀이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리태성의 한바탕 속풀이
김정호의 시장경제 바로알기
청춘통일
다큐멘터리 김정은
한국경제사
젬마가 간다
기획취재, 김정은의 경제정책을 진단한다
세.젤.궁 청춘이야기
조선으로 떠나는 여행
남조선에 대한 궁금증, 리광명이 풀어드립니다
노래실은 편지
자유조선방송 극본 공모 당선작, <걸어서 영변까지>
9개의 비극에서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자
북한에서 왔습니다
알판으로 보는 세상
이지연의 책 읽는 라디오
황장엽 회고록
라디오 연속극,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도 겐지
개혁개방으로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고민체신소
광복 6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한 1분
북한 시민교육,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신비한 직업사전
니하오, 중국
북한 시민교육, 인권이란 무엇인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마주보기 캠페인
북한 시민교육, 언론이란 무엇인가
국민통일방송 캠페인 <통일을 기다립니다>
생존중국어
련속극으로 남조선 엿보기
수군수군
통일광장
다시 쓰는 김일성 혁명력사
다큐, 독재자의 말로
남북중(南北中), 세 여자 이야기
남조선은 어떻게 경제강국이 되었나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열전"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정의와 진실
조선민주화 전략 강의
죄악으로 가득찬 김정일의 인생
민족의 이름으로 고발한다
집중분석, 김정은은 누구인가?
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