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등록일 2013.05.13

유난이 추웠던 이번 겨울은 다가오는 봄의 기운에 밀려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따스한 아침 햇살이 봄이 왔음을 실감케 합니다. 상쾌한 봄의 기운 때문인지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즐겁기만 합니다. “오늘은 더 열심히 일해야지! 북한 아줌마의 본때를 보여줄 거야.” 라는 결심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다 보면 어느덧 3년 동안 몸담아 온 정든 회사에 도착하게 됩니다. 중소기업 사무실이 입주하고 있는 고층건물을 관리하는 게 저의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터입니다. 이곳에서 10년 전 한국에 입국해 처음 가졌던 저의 꿈을 향해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인 2003년 4월, 48년을 살아온 정든 땅을 떠나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남조선에서 걸려온 아들과 딸의 전화를 받고 무작정 길을 나선 것입니다. 자식들의 설득에 도강을 결심했지만 마음속의 불안과 두려움은 매우 컸습니다. 아들, 딸의 얼굴을 보려면 ‘남조선’으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남조선하면 ‘안기부’와 ‘남산 지하실’이 떠올랐습니다. 남조선으로 가면 이곳에서 고문으로 죽는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물어본 첫마디도 “남조선에 가면 죽이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잘 살고 있다는 자식들의 말을 믿고 탈출을 하긴 했지만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의심은 남조선에 도착하는 순간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 딛는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리석으로 깔린 공항 바닥과 깨끗한 화장실을 보니 남조선의 높은 경제 수준을 한 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남조선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라며 친절이 맞이해준 안기부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조선에서 믿었던 남조선에 대한 정보는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서울 시내의 빼곡한 고층 건물들과 그 사이로 질주하는 자가용차들을 보면서 남조선에 오길 참 잘 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자식들과 함께 남조선의 수도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더욱 확고해 졌습니다.

남조선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바로 끼니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에선 항상 한 끼를 먹으면 다음 끼를 걱정해야 했기에 쌀과 먹을 것에 대한 한을 품고 살아 왔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쌀독에 쌀을 가득 채워 놓고 마음껏 밥을 지워 먹는 것이 평생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이 남조선에 오는 순간 바로 해결 됐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시사철 싱싱한 과일과 남새, 생선, 조선에서는 먹어 볼 수도 없는 소고기를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에서는 귀하디 귀한 입쌀을 남조선에서는 공짜로 주는 곳이 많았습니다. 조선에서 왔다고 하여 동사무소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입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탈북자 모임에 참가하니 선물로 입쌀을 주기도 했습니다. 쌀을 받을 때마다 ‘여기가 김일성, 김정일이 평생 외쳐온 공산주의 사회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꿈도 꾸지 못했던 생활을 남조선에 와서 누리게 됐지만 어려움 또한 있었습니다. 남조선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반백년을 살다 왔으니 부딪치게 되는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파트 승강기를 탈줄 몰라 살고 있는 6층까지 1달간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복잡한 서울지하철을 잘못타 몇 시간을 헤매다 겨우 집으로 간 적도 많았습니다. 남조선에서 쓰는 어려운 용어 때문에 마트라 불리는 대형 상점에서 물건을 잘 못 사올 때도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반복되니 처음에는 모든 것이 힘들고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점차 나도 모르게 몸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부딪치다 보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자신감이 생기니 도전하고픈 것들도 많더군요. 컴퓨터기능사, 요리사, 운전면허 자격증에 도전해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도전을 통해 내가 원하던 것을 다 이루다 보니 조선에서 없었던 ‘꿈’이라는 것이 생기게 됐습니다.

제 꿈은 통일이 되면 큰 트럭에 입쌀을 가득 싣고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입니다. 꿈이 생기니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50을 내다보는 조선 아줌마가 할 수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생각으로 시켜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노동을 해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했습니다. 남조선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 했으며, 맡은 일은 무조건 성실히 끝냈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경험, 성실함을 인정받아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3년을 몸담아 오고 있습니다. 입사 후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한 결과 현재는 사장님도 인정해주는 모범 사원이 되었습니다. 자랑 같지만 사장님께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기서 오래 일해 달라”는 부탁을 하시더군요. 물론 저도 나를 인정해주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할 생각입니다.

한국에 온 첫해 가졌던 소박한 ‘꿈’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트럭에 입쌀을 가득 싣고 고향땅으로 갈만한 경제적 여유도 생겼습니다.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제 남은 것은 바로 통일입니다. 조선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힘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통일에 대한 희망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 희망이 실현되는 날 저의 ‘꿈’도 현실이 될 데니까요. 저는 오늘도 제 꿈을 향해 일터로 갑니다.

CM 나훈아_머나먼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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