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등록일 2013.05.06


화창한 봄날이 왔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가 마치 죽은 듯 조용히 잠자던 사람이 푸~ 숨 쉬며 살아나듯이 환희롭다. 산과 언덕에는 꽃망울들이 하나둘 세상을 향해 머리를 내밀고 있고 들판에 아지랑은 따스한 봄빛을 맞아 찐 빵에 김이 나는 것 같았다. 오늘은 토요일, 한 주간 방송사 일을 마치고 대학 강의를 들으러 차를 몰고 대학원으로 가는 길이다. 거리를 꽉 메운 자동차 행렬이 녹색 신호등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인왕산을 올려다보는 나의 눈앞에는 2년 전 대한민국에 도착해 보내던 4월의 그날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4월. 나에게는 한꺼번에 많은 것이 몰려왔다. 먹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갈 곳도 많았다. 우선 처음에는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돼지고기 불고기, 결혼식에나 먹어보았던 통닭도 실컷 먹었다. 안주가 너무 좋아 매일 술을 마셔도 잘 취하지도 않았다. 실컷 마시고 임산부 배가 되도록 먹고는 집안이 떠나가도록 “자유 좋다”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북한에서 실컷 먹어보고 싶었던 룡성맥주 생각이 나서 카스 맥주를 상자채로 사다 놓고 마른명태에다 실컷 마셨다. 북한에서 룡성맥주에다 북어 안주를 먹는 사람은 책임비서급 간부였다. ‘에라 오늘 그 책임비서처럼 실컷 먹는다’ 하고 명태를 찍찍 찢어서 실컷 마시고 저도 모르게 또 “좋다” 하고 소리치고는 잠들었다. 그런데 그 마른명태가 배안에 들어가 불어났는지 잠을 자다가 너무 힘들어 일어나니 속이 머슥머슥하고 배가 무드륵 한 게 좋지 않았다. 북한에선 이렇게 과식으로 배가 아프면 어머니가 비상용으로 감춰두었던 구명수 몇 방울 물에 타서 주던가, 그것이 없으면 식초에다 소다를 타서 부글부글 끓을 때 마시면 코가 찡하며 낫군 하던 생각이 나서 식초를 물에 타서 마셨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떠서 창문으로 따갑게 비추고 있었다. 문을 열고 보니 복지사 아줌마가 서 있었다. 이 아줌마는 지금 나에게 있어서 구세주나 같았다. 자원봉사를 하신다는 이 아줌마는 나에게 한국에 와서 생소한데서 모르는 것이 많을 것이라며 참으로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지하철 타는 법, 버스 타는 법, 은행에서 카드로 돈을 찾는 법, 또 어떤 것은 말로 설명해도 될 것을 함께 현지에 가서 차근차근 가르쳐 주군 하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와 밤새 잠은 잘 잤나 안부를 묻는다. 북어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자다가 배에서 북어가 불어나 힘들어 식초를 타서 마셨다는 얘기를 하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그럼 함께 나가자고 한다. 간판을 보니 25시 Seven Eleven 이라고 써 있다. 이게 뭐하는 데냐고 물으니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활명수를 사다 줘 그걸 먹으니 속이 쑥 내려갔다. 그 아줌마 말이 여기 남한은 자정 밤에도 갑자기 약이 필요하거나, 먹고 싶거나 마실 것을 팔아주는 곳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24시간 편의점’이라고 한다며 앞으로 배가 아프거나 자정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기를 이용하라고 알려주었다.

처음 남한에 와서는 하루하루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일과였다. 매일 실컷 마시고 먹고 TV를 보고 하나원을 나온 친구들과 만나 서울시내 구경도 다니다 나면 어느새 한 주가 다 지나간다. 뭐니 뭐니 해도 한주간이 되면 생활총화하자, 강연회하자, 학습하자고 볶아 대면서 찾는 사람이 없어 좋았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보고 싶은 것도 다 보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여기가 정말 내가 두려워했던 남한 이였던가 생각되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하나원에서 준 1차 정착금이 다 떨어지게 되자 이제는 일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가족처럼 지낼 분을 찾습니다”라고 쓴 광고를 보게 되었다. 식당이었는데 한 달 일하면 월급 180만원을 준다고 한다. 180만원이면 1700달러? 대단한 돈인데, 무작정 취직하였다. 그러나 사흘을 못 넘기고 식당을 나오게 되었다. 식당을 나온 이유가 참 맹랑하다. 일을 못해서도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니었다. 단지 말을 몰라서였다. 조선 사람이 조선말을 모르다니, 생각 만해도 어처구니없었다. “여기가 미국이야 프랑스야? 조선 땅인데 웬 외래어가 이렇게 많아?...” 지금까지 천국에 왔다고 그렇게 좋아하던 내가 처음으로 남한에 대한 불평을 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식당에서 배식을 맡아 음식을 갖다 주어야겠는데 주문하는 음식을 미처 따라 외우지 못해 실수를 연발했다. 사흘 동안 지켜보던 새파란 아줌마 사장이 “안 되겠어요, 잘 생긴 미남자여서 서빙으로 받았더니 손님들과 대화도 바로 못하니, 그러다가 당신 때문에 우리식당 손님이 다 달아나겠어요.” 한다. 사흘 일한 값 15만원에다 5만원을 더 놔서 20만원을 쥐어주면서 가라고 한다.

너무도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남한이 결코 녹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쫓겨난 다음날 곧바로 서점에 가서 외래어 사전을 사다 놓고 매일 외래어 10개씩 외웠다. 집안의 냉장고에도 붙이고 련속극을 보는 TV에도 붙이고 드나드는 문짝에도 붙였다. 잠들기 전에 한 글자라도 외우고 잠들려고 천정에도 써 붙였다. 세여 보니 남한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외래어만도 천개가 넘었다. 이제는 커피숍에 가서 “거 시원한 아이스커피 주세요.” 하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다.

그러다 쉽게 돈을 벌수 있다는 친구의 소개로 보험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험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라곤 고작 탈북자가 전부인 내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보험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탈북자 선배와 함께 남한에서 성공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결론은 자기가 성공하려면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해야 하며 자기가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찾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목소리가 좋고 글을 쓰는데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부분에 도전하였다. 방송 부문에 목표를 세우고 컴퓨터 프레미어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정도로 기술을 익혔을 때 각 방송사에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결국 한 방송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북한관련 원고를 교열하고 검토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제는 북한 관련 기사를 쓰고 직접 마이크를 잡고 아나운싱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 할 수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북한과 국내외 정세에 맞게 글을 쓰고 자기를 따라 세우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결심이 서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너무도 배곯으며 힘들게 대학을 다녀서 다시는 대학을 다니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던 내가 다시 대학원에 지원하여 입학하였다. 그것도 북한대학원 대학교에...... 참 숨 가쁘게 흘러온 2년, 주마등같이 흘러간 나날이었다.

갑자기 “빵빵” 하고 경적이 울렸다. 어느새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잠시의 머뭇거림에도 뒤에 있는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급기야 나의 차도 떠났다. 그렇다. 이 세상은 명상에 잠겨 뒤돌아 볼 새도 없다. 모두가 열심히 사는 세상이다.

오늘도 나는 대학원에서 남북협상전략 유형에 대해서 강의를 받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한 주간 회포를 풀며 맥주를 마시겠지. 그러나 명태 북어를 배터지게 먹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북한에 있는 가족을 잘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러 교회로 갈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가노라면 언제인가는 저 북한의 김 씨 세상도 끝장나고 얼어붙은 동토대 그 땅에도 따스한 자유의 봄이 올 것이다. 그 자유의 봄날 나는 박사 메달을 목에 걸고, 뒤 트렁크에 돈가방을 가득 실은 검은색 승용차를 몰고 고향에 갈 것이다. 그러면 고향사람들은 우리 동네에도 개천에서 룡(龍)이 났다고, 제 2의 정주영이 탄생했다고 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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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여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홍원일 씨를 만났습니다.

한국에 와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고 있는 홍원일 씨, 그러나 조선과는 너무나 다른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은 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북송이라는 위기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유의 땅 한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그의 첫 느낌은 어땠을까요?
(천국 같았다)

한국에서의 첫 느낌이 천국 같았다는 홍원일 씨, 그러나 한국 정착 과정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그가 한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언어의 습관)

한국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탈북자를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에 충격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유자차 사건)

때론 힘들고 때론 외로운 한국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역시 한국 사람들이었다는 홍원일 씨.
(한국 사람들의 지지가 제일 큰 힘이었다/ 경찰과 목사)

그는 한국에 와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일하면서 대학원에 들어가 조선경제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에서 와서 다시 조선을 공부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대학원 진학 이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홍원일 씨지만 가슴 한 켠엔 언제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좋은 음식 먹을 때/ 여행)

누구보다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며 살고 있는 홍원일 씨, 마지막으로 그의 꿈을 물었습니다.
(꿈에 대해)

CM1 김동률-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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