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부 좌절하는 외교관, 첫 번째

등록일 2011.08.16


1980년 7월부터 자이르 주재 북조선 대사관에서의 세월은 말 그대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희망과 야망에 넘친 햇병아리 외교관은 더워도 더운 줄을 몰랐고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자이르에서 맨 처음 받은 충격은 남조선 외교관들을 볼 때였다. 나는 처음에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저 사람들을 꼭 이길 것이다. 그리고 통일은 우리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이룩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곤 하였다.

당시 남조선 경제에 대한 나의 관념 역시 무척 단순한 것이였다. 남조선 경제는 미국, 일본의 독점자본의 기술과 자본, 남조선 로동자들의4 피땀과 로동력에 의하여 겨우 지탱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업이라는 것도 섬유나 의류, 신발류나 생산하여 <출혈> 수출하는 허약한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1980년대 초 남조선 기업 현대에서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수출하였던 승용차 <포니>도 기관이나 주요 부속품들은 일본제일 것이고 외형이나 남조선에서 만든 것이라고 단정을 해버렸었다.

그러다가 1982년 초 엔가 주재국의 한 상인이 포니 승용차를 타고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허물이 없는 사이였던지라 포니의 성능을 물었더니 괜찮다는 것이였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차의 기관실 뚜껑을 열어 내부를 세밀히 살피면서 일본제 부속품이 어데 있는가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아무리 보아도 ‘남조선에서 만들었다’는 글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 열쇠를 빌려서 2km 정도 운전도 해보았다. 차를 몰면서 나는 포니를 우리의 <백두산>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백두산이란 차를 만들었다가 너무나 한심하여 용광로에 다 처넣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실제로 차를 만들어 수출까지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북조선 외교관으로서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엉뚱한 생각>도 하여 보는 것이였다.

<저 남조선 사람들의 경제가 실제로 발전하고 있지 않는가>하는 의문을 떠올리면서도,<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하는 생각을 가지려고 애썼고 남조선 외교관들을 더 <미워>하려고 노력하기까지 했다.

‘저 사람들이 비록 외국에까지 나와 돌아다니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미국의 식민지 신세를 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또 저 사람들이 있기에 통일이 더디여지고 민족의 고통이 더 심하여지고 있으니 저 사람들을 더욱 더 증오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해외에 나오기 전에는 전혀 없었던 의문점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시기에 바로 나의 세계관에서는 비교 개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물론 남조선의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통일 같은 것은 꿈속에서도 생각을 하여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자본주의 나라의 텔레비죤과 출판물에서 이러저러한 현상들을 목격하면서 나의 머리속에는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남조선 사람들을 <적>이나 <원쑤>로만 생각하던 내 머리 속에 처음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 <동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생각은 1981년 1월 자이르 대통령이 마련한 <외교관단의 신년인사 교환모임>에서부터 싹터왔다.

북조선 권력층의 실상과 비화를 밝힌, 고영환의 평양25시, 지금까지 랑독에 리광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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