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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수도요금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하니 우리 집 상하수도 계량기에 문제가 생겼으니 집을 방문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퇴근 후에 방문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때면 직원들 다 퇴근하기 때문에 평일 낮에 무조건 시간을 내라고 한다.
정임 : 자기들만 일하는 것도 아니고, 또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무조건”이 왜 나와?
마뜩하지가 않았다. 자기들 손해나는 일엔 적극적으로 매달려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였다.
평일엔 시간을 못 낸다고, 회사일이 바쁘니 휴일에 오라고 했더니, 이번엔 이때까지 내지 않은 수도요금을 한꺼번에 청구될 거라고 위협적으로 나왔다.
이건 또 뭐야? 황당했다. 매달 꼬박꼬박 관리비와 임대료를 착실하게 냈는데, 그 집에서 사는 전기간 수도요금만은 한 번도 내지 않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즉 몇 년동안 물을 공짜로 썼다는 것이다. 이런!
더 이상 뻣뻣하게 굴면 나만 손해될 것 같다. 후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 바로 전화를 끊고, 책꽂이에 끼워놓은 몇 달 간 고지서들을 허둥지둥 꺼내 보았다.
그런데, 진짜루 수도요금칸에 아무것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 그동안 총액만 보고 요금을 냈으니, 정말 이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임 : 그럼 이거 어떻게 되는거야? 이때까지 안 낸 요금 몽땅 합해서 내라고 할까? 적어두 2년은 살았으니, 일년에 대략 20만원이라고 해두 2년이면 40만원? 에?(눈 휘둥그레) ~~~~~ 우와~ 이거 큰일 났는데?! 어떡하지? 물을 안썼다고 할까? 아니야, 말두 안돼,... 그럼 먹는 물은 사서 먹고 샤워는 ‘불가마’에 가서 했다고 할까? 아~ 것두 될 것 같지가 않아~~ 젠장 이걸 어쩌지? 우와~왕~~~~~~
암튼 당장 내일 아침 시간내야 할 듯 하여 사장님께 사정이야길 했더니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장면전환)
다음 날 아침, 집에 온 수리공들에게 절절매며 고분고분 대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웃으며, 어서 오시라고, 시원하게 한잔 드시라고 음료수도 예쁘게 따라드렸다. 이 추운 날 시원한게 뭐가 그리 좋으랴만~
한 직원이 계량기를 뜯어보더니 아예 고장이 났다고 한다. 계량기를 교체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작업을 금방 끝낸 후 반장같아 보이는 사람이 말하기를 계량기 불량으로 책임은 자기네가 지겠다며 그냥 가는게 아닌가.
어후~ 다행이다. 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뒤 꽁무니에 연신 허리굽혀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긴장이 풀리니 온 몸이 녹작지근 해졌다.
정임 : 하마터면 몇십 만원이 훌렁 날아갈뻔 했네, 북한에선 물세고 전기세고 그런거 하나도 모르고 살았는데, 에이 내 참... 허헝~ 근데 이정임! 설마 그렇다구 그 생활이 그리운 건 아니지?
생각해보니 세금을 안 내는 대신 물이 안 나와 강물을 퍼날라다가 먹고, 전기가 부족해 까막나라에서 살았던 것 같다.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르는 법! 차라리 돈 내고 언제든지 마음껏 쓰는게 낫다고 두말 하면 잔소리가 되겠지~~